2018년
5월 30일 수요일
오후 5:00
TODAY'S GOD
MESSAGE
( 2018-5-30 수요일
)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 SOUTH KOREA , SEOUL
다윗 성 온라인 교회
PASTOR. DUK SOO YOO
유덕수 목사
<
오늘의 말씀 >
( 세대 차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반발 감정이
자식과의 관계에서 불화를 촉발하지요
자식들의 부모들에 대한 반발 상황은
부모들로 하여금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훈계할 목적을 강요해
꾸짖는 요인속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 부모와의 대화
[
아이들의 말 ]
" 나에게 신경 쓰지 마세요! "
부모를 대하는
아이들의 생각과 말의 기준이
과거의 기준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부모들에 대한 반감을 품게 됩니다.
강압적인 부모들에게 대하는
악한 감정이 일어나
부모를 말로 치게 됩니다.
여자는 여전히 그럼에도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자신이 낳은 아이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할 때 서운함 속에서
악마같은 자식이라 보여지게 됩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그런 비틀어진 관계가
과거와 다른 그런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부모의 입장]
부모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아직도 낡은 오래된 구 시대적인
삶의 가치관 만을 사수하려 들지요.
그러나 변화를 거듭하는 새 시대는
새 시대의 기준 만을 허용하게 될 뿐입니다.
부모 세대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바뀌고 있는
새 시대의 급속한 변화 상황에
쉽게 적응하기가 어려워 지지요.
자식은 부모의 생각이
자신의 견해보다 항상
바르지 않게 보인다고 생각하지요.
자신에게 강요만 하는
부모가 새 시대를 보지 못하며
부모가 과거처럼 강하게 윽박지르며
강요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모르는 늙은 부모들의 세대가
부모의 입장 만을
강제로 강요하는 상황에서
그런 부모의 강압적인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반항하는 사태가 오게 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이미 변화된 현실을
빨리 적응해 가는 그런 세대가
시대를 이끌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게 됩니다.
부모는 뒤쳐지게 되고
시대에 낙오자가 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시대에 뒤쳐지기 싫어하게 됩니다.
남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은
시대에 뒤쳐지는 상황에 처한
아이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시대가 변화의 축을 이동시켜서
앞선 변화를 재촉하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은
늙은 세대는 자신의
낡은 삶의 방식에 불과한
과거에 아쉬움과 미련을 두고
과거를 붙잡으려고 발버둥치려 하지만
시대는 전혀 뒤로 갈 수
없게 됩니다.
여자는 뒤쳐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스스로 자신이 적응해 온 인생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할 경우
뒤돌아 보며
과거를 자꾸 붙잡으려 애쓰게 되지요.
그래서 더욱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이 힘든 상황 상황속에서
슬픔이 많아질 뿐입니다.
그 이유는 시대는 뒤로 흘러 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나이든 세대들의 인생 탄식>
자신의 출신 학교의 동기들과 같이
이제 이미 퇴진하고
늙은 세대가 된 것을 아쉬워 슬퍼하지만
자신들이 그동안 어울렸던
동기를 찾지만 나이가 들어 퇴진했고
이미 그들도 쓰러졌을 뿐입니다.
인생의 한 때를 다 지난
무용지물이 된 늙은이로
취급 당할 뿐이지요.
하나님을 떠난 늙은 세대들이
자신의 오래된 반가운 친구를 찾지만
그들의 세가 이미 줄어 들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반대로 신자들이 아닌
새 시대의 주역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시대는 새 사람을 세워가게 됩니다.
늙은 세대들은 계속 쓰러지게 됩니다.
시대가 그들을 거부함에 따라
쓸모가 없는 존재로 전락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뜰에 늘 반대만 일삼던
악한 주님을 떠난 사람들이 죽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적인 시대적인 변화를
하나님의 뜻으로 전하게 됩니다.
* 열심 있는 신앙인의 기도와
그 약속의 성취에 관한 교훈
<기도 중에 약속으로 미리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그에게 들려진 천국 약속에 관한
성취 이행 여부에 관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관한
교훈 메시지입니다.
첫번째 <약속의
이행과 성취
시기>
하나님의 약속하심이
어떤 신앙인들에게는 기도할 때
즉각적인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가서 뒤늦게 기도의 약속이
자신의 현실로 이루어 지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그가 현실에서 아직 기도로 응답을 받은
천국 신앙의 약속 지분이 아직
그의 현실로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그의 어느 날 그가 늘 바라던
미래적인 상황속에서
열려진 축복이 그에게
현실로 이루어 지는 상황이
다가오게 됩니다.
두번째 <신앙의 착각>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만 해당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에 관한 천국의 약속이 아닌
타인에 관한 약속이
설교 메시지로 들려질 경우
그 자신에게는 일평생이 다 지날 때 까지
이루어 지지 않게 됩니다.
어쩔 수 없지만 그는 이런 상황의 차이를
구분해 가야 하지요.
남의 일과 속에서
기도의 약속이 있었던 것은
오직 천국의 부르심에 따라
그에게만 해당이 될 뿐입니다.
그에 대한 천국이 허락한
기도의 약속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일과 와는 거의 일치되지 않음으로
그와 남을 비교해 같다고 말할 수 없으며
남과 자신은
신앙적 부르심의 차이라는 측면에서
생의 결과로 다가올 기업의 차이가 있었음을
엄격하게 구분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각인들의 다른 신앙 안에서
여러 인생이 비슷한 인생처럼
삶이 전개 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각인이 지켜 온 신앙적인 삶의 결과적 차이로서
그가 축복으로 누려가게 될
인생의 기업은 결코
남과 일치될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나와 일치될 수 없는
각기 다른 인생이 펼쳐지고 있을 뿐입니다.
< 한 가장은 신앙적 변별력을 갖춰가야 합니다 >
한 가장은 주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을 때
자신에 관해 들려지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그의 부르심에 관한 교훈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직접 인도 되는
그를 향한 믿음의 적응력을 제시하는
신앙적 현실과 거의 모를 수 밖에 없는
그의 미래적 상황에 관한 성령의 인도 방식을
그의 신실한 신앙 안에서 남의 상황과
전혀 다름을 충분히 쉽게 구분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님의 말씀을 전해
구체적으로 가르쳐 말하게 됩니다.
내 현실의 가이드 라인이
성경 말씀 안에서 가르쳐져
실행속에서 내 현실로 이루어 지지만
나와 무관한 것은
애초부터 나의 개인적인 현재적 삶과
거의 상호 밀접한 삶의 연결성이
전혀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남의 것과 내 것은 신앙 안에서
현실적 기업으로 성취될 때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한 가장은 학수 고대하며
너무 이루고 싶은 꿈이 늘 크지만
현실에서 아무런 그의 줄기찬 기도와
삶의 직접적인 해결 가능성이 구체화 되는
현실적인 연결성의 고리가 없는 경우가
있지요.
즉 그런 경우는 그에게 허사가 되는
오직 일장춘몽의 헛된 도달 불가능한
꿈만 쌓게 될 뿐입니다.
현실로 내 신앙적인 기도의
실재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 생활과
직접 연결이 될 수 있는 경우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런 연결 상황을
통해서 길을 여시게 됩니다.
우리가 비록 열심을 낸다고 착각하고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꿈을 무한대로 키우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각자에게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의 생각처럼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게 됩니다.
일정한 그를 향한 제한된 범위 안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고
그런 상황이 제한적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내 신앙적인 상황과 현실적 상황이
연결성이 없게 되는 경우
나에게는 축복이 해당이 될 수
없는
그런 경우에 해당이 될 뿐입니다.
<기존 교인들이 보는
다윗 성 사역에
관한 관점의
착각>
우리는
여호수아의 사역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을 따라
실천 사역을 행하게 됩니다.
기존 교회와 많이 다른
새 시대를 향한
새로운 신앙적 관점에서
사역을 실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사역은
신자들이 전혀 모를 수 밖에 없는
미리 파악할 수 없는
그런 비 공개된 사역을 행하게 됩니다.
기존 교회의 신자들의 일부가
우리에 대한 사역의 부름을 모르고
마음대로 판단하거나 호칭할 수 없습니다.
그들 자신이 한 때 과거적 신앙의 잣대로
크게 잘못 배운 것을 오늘도 모르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로 여러 번 가르쳐도
그릇된 낡은 모호한 신앙관이
천국의 실제적인 확실성에
기인하지 않는
그릇된 신앙관을 버리지 않는
과거의 잘못된 신앙적 기준 만을 옳게 여겨
계속 천국의 기업이 그들의 현실안에서
자꾸 닫혀지는 어리석게도
그 길
만을 고수하려 들게 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낡은 신앙관을 타파해
실제하고 있는 천국 신앙을 가르쳐
성경 해석의 말씀의 새 기준을 토대로
잘못된 신앙관을 수정해 가르치게 됩니다.
< 믿음 안에서 새 현실 가능성이 열려질 때 >
새로운 현실 생존의 가능성이 열려져
보여지게 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꽃들이 그동안 그의 현실에서
고난 속에서 현실이 막혀져
괴로움이 너무 컸지만
질주하는 다윗 성 교회로 들어와
새 현실이 열려지는 상황에서
새 길이 열려지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됩니다.
<사이비 악마를 치게 됩니다>
우리는 사이비 악마들을 치게 됩니다.
그들은 너무 큰 교세를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쉽게 무너뜨리게 됩니다.
악마들이 신기한
새 가입이 있다고 말하는
악마들의 집단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악마들이 새로워 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들의 심적 본연의 상황인
그 어둠을 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신앙적 안목>
한 집안의 가장은 신앙적 열심속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의 말씀의 가르침과
접목이 될 때 비로서 천국의 안목이 열려져
신앙적인 새 현실 적응력을 낳는
새 안목을 발견해 새 인생의 가능성을
다시 볼 수 있게 됩니다.
<민사 소송이 된 사건에 관해>
민사가 어떤 사람을 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다수는 어느 날
그들이 민사 소송의 대상이 되어져
왜 고생을 하는 지를 모르게 됩니다.
그 자신의 삶이
왜 남에게 큰 피해를 주었는지를
그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송이 기존 교회의
낡은 신앙적 가르침에
발원한
구 시대적인 기준의 행위 임을
깨우치게 됩니다.
많은 기존 교인들이 그동안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그들 스스로 모르고 살아 왔음을
지적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민사 소송이 된
남의 사건에 관해
신경을 쓸 필요성은 없습니다.
기존 교회의 신자가
소송 대상이 되어져
고난에 빠지지만
그들을 건지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상황인지라
그들이 어떤 상황을 낳았는지
거의 모르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시대는 급속히 너무 빠른 가속도를 내며
새 시대를 맞기 위한
변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흘러 가지요.
과거의 주역인 꾸리 꿀꿀이들을 위했던
그리움이 있었던 늙은이들이
그들을 후원했지만
시대는 변화의 기준을 거부하는
그들을 치게 됩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그 치는 행위가
단지 카톨릭의 죄악의 행위로
자신에게 일어난 것으로 보게 되지만
실제로는 그 소송의 배후는
변화를 재촉하는 시대의 정체가
숨겨져 있었을 뿐이라는 점입니다.
기존 교인들의 주장에 기초한
그런 상황들이
새 시대를 열게 되는 것을
막으려 한 적극적인 방해 행위로 간주해
시대는 그 사적인 그의 행위를
자신의 이해 관점하에서
악한 악마적인 행위로 치게 된다는 것을
알고 가야 합니다.
Microsoft
OneNote 2016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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