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5일 금요일
오후 5:00
TODAY'S GOD
MESSAGE
( 2018-5-25 금요일
)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 SOUTH KOREA , SEOUL
다윗 성 온라인 교회
PASTOR. DUK SOO YOO
유덕수 목사
<
오늘의 말씀 >
( 시대의 변화를 파악하기 )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시대는 거의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늘 느껴지게 됩니다.
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의 주변 만이
제한적으로 조금만 보일 뿐입니다.
남이 자신에 관한 것을 이미 변화된
자신의 입장에서 조차
말을 꺼내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세상이 급속히 변화되어져 가는 상황을
그는 신속히 파악할 수 없게 될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가르쳐
시대의 변화를 깨우쳐 가게 됩니다.
시대는 자신들 만의 숨겨진
자신의 생각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고
신속한 적응을 위한 자신을 위한 삶의 변화를
거듭해 갈 뿐입니다.
우리는 기존 교회의 신자가 아닌
이방인들이 대하기가 쉬워져
더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 가운데 애초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들어야
시대는 더욱 새로워 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시대를 향해
주님의 나라를 새롭게 이루게 됩니다.
<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신앙 생활 정착>
( 속박으로 부터 풀려난 자유로운 삶 )
이제 한 집안의 가장은 더 이상 과거처럼
남을 의식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 인생 관리 요령
( 우리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
우리 주변에 들어 온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대인 관계를 구축해 감에 있어서
새롭게 우리를 알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처럼 주변에 속박 당해
묶여져 살 필요는 없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이 아닌
우리의 의도에 따른 길을 걷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가 대할 때
우리는 그들을 남으로 보게 될 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내 삶이
타인에 의해 주도되는 내가 원치 않는
남의 의도에 의해 질질 끌려 다니며
내가 이끌려 질 필요가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 새로운 나를 위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때로는 나를 수호하기 위한
차폐 방호벽이 필요 합니다.
남들이 우리를 더 이상 괴롭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구세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앙 안에서
자유롭게 해방시켜 가실 때
새로운 나를 위한 새로운 인생을
강하게 실천해 감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겪었던 괴로운 현실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남으로 부터 입었던 깊은 상처와
그런 피해를 입었던 씻겨질 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의식의 흔적들이 씻겨져
사라져 갈 수 있는 그런 삶의 길을
선택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이 우리를 마음대로 흔들 수 없습니다.
남의 소견대로 그들 마음대로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그런 시대가 왔습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 단체로 가는
그런 새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 오늘의 어려운 현실을 사는
(우리들의 신중한 삶의
대처 방식)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 올 상황이
어떤 상황으로 다가올 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출발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주님의 뜻으로 실행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주님의 명령 실행 >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실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쉽게 내가 이해하기 힘든 천국의 개념이라
처음 들어도 모르는 말들도 듣게 됩니다.
< 내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대의
삶에 대한 시각적 변화>
우리의 새 시대가 풍요로움의
변화된 시대를 열게 될 때
삶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인생의 낭만이라는 삶의 개념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 보는
구 시대에 속한 일만 아는
그런 부류속에 속해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과거 한 때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자신의
인생 번영을 보장해 주었다고 생각해 온
과거사적인 인생의 기준이
오늘에 까지 연장되어져
아직도 현실로 고착되기를 원하는
과거 한 때를 열심히 살았던 많은 인생들은
열심히 일만 하던 기준으로 삶을 보려 하는
그런 편중된 의식을 갖고 일평생을 살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일만 보이고
여우로운 인생의 삶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늘 속해져 있기를 원하며
자신 만의 번영이 지속되기를 원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방식으로
변화된 현대적 인생을 살고 깊은
그들의 요구를 듣지요.
우리는 인생 시차에 뒤쳐진
그들을 자주 일깨우지만
그들은 일만 하는 인생을
가장 고급스러운 인생이라 고집하는
착각속에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 남이 어떻게 살 던
남의 일에 너는 간섭하지 말라!" 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들은 우리들의 인생을
남의 사적인 낡은 인생관에 맞춰
나를 더 이상 희생시켜 살 필요성은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남을 위한 인생이 아닌
우리의 인생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남의 인생의 가치관에 의해서
우리들의 인생이 함부로 단죄되거나
정죄 될 수 없음을 선언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인생 각자가
남과 다른 인생을 살 뿐입니다.
<상실한 존재감을 다시 회복시켜 가는 길>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오직 자신에게 가장 귀한
삶의 가치성과 강한 존재감을
다시 부여하게 됩니다.

<기존 교회의 불행한 신앙 생활>
기존 교회에 속한 신자들은
아직도 불행 만을
하나님의 뜻으로 잘못 깨닫고 그런 불행을
스스로 찾기를 원하게 됩니다.
사단 악마 마귀가
시대를 호령하고 살았던
한 시대가 그런 거짓된 잘못된 인생의 길을
참된 신앙의 길로 여기도록
'수리 - 수리' 만 부르는
악마에게 그릇된 가르침을 받았을 뿐입니다.
자신의 찢겨진 삶이 엉망이 된 사람들이 착각해
그렇게 슬픈 인생을 바른 신앙의 길로 여겨
일평생을 아직도 어둡게 살게 됩니다.
늘 어리석어도 자신은 현명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새 시대가 과거의 시대상을 바꾸다>
과거사의 주역들을 반가워 했던 한 시대는
그들 만에 의해서 주도 되었던
주인공을 자리를 다시 내 놓고
잔인한 시대로 바뀌어 지는
새 상황을 맞게 됩니다.
기존 시대가 카운터블로를 날리는
잔인한 새로운 시대가 휘두르는
카운터 펀치에 때려 맞아
죽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 반가워 했던 과거의 시대를
늙은 신자들이 서로 간의 모습이라 보지만
그들이 반기는 이유는 따로 있었을 뿐입니다.
자신들이 생존을 위해 먹고 살아야 할 이유가
즐거움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새 계획을 위해 무리한 차입은 금해야 합니다>
(망하기 직전)
엉터리 신앙관을 가진
낡은 신앙관을 품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했지요.
그런 그릇된 엉터리 신앙관을 배워
기도만 하면
'만사가 다 해결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무리수를 두고
마음속에서 기도하면서 생각하기를
" 내가 많이 기도했으니
이제 무조건 새롭게 진척시켜 가자! "
이처럼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많은 자금을 차입하다가
상환 불능 상태에 빠져 탈출 불가능한
심각한 고통에 빠지게 되지요,
그릇된 엉터리 신앙관에 기초한
거짓 신앙을 배워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그렇게 죽게 됩니다.
<공장 운영에 돈 줄이 막힌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운영 자금을
새로 빌릴 곳이 없고
돈 줄이 끊겨지고 나서
또 다시 다른 돈줄이 열려질 가능성을
충분히 다시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한번 끊겨진 신용 거래가 닫혀질 경우
그는 수 십년 동안 끊겨진 돈 줄을
다시 회복시키려 노력하지만
그에게는 불가능 한 상황이 이어질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상황이 올 때
" 내가 운신의 폭이 좁아
너무 대인 관계가 폭이 좁았다. 부족했다 "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어려워 진 상황이 올 때 다시
회복이 불가능한 신자가 대부분이 됩니다.
우리는 그들과 무관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이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해져 있음을
밝히지 않았을 뿐입니다.
한 번
어려워 진 사람은 다시 그 상황이
펴지기가 쉽지 않지요.
*예외도 있습니다
< 거짓에 승부를 두는 인생>
악마의 인생은 악마의 인생을 살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악한 인생이 늘
거짓 말에 승부를 두는 인생도 있음을
알고 가야 합니다.
늘 속여 사람들을 제압하려 든다는 점입니다.
악한 인생은 그렇게 생존해 왔을 뿐입니다.
<상징적 표현>
문을 닫고 가는 상황이 다른 사람들을
고립시켜가게 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 문을 닫는
그런 인생이 있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살아 있기 위해 문을 닫아야 될
그런 상황이 온다는 그런 사람들이
하인들을 시켜 문을 닫게 됩니다.
문을 닫아야 생존이 가능한 경우
그들은 자신을 위해 문을 닫지만
문이 닫혀진 후 다시 문을 열 수 있다고
보았지만 그 문이 파괴가 될 경우
그 상황이 깨져서 사라져 없어지게 되지요.
한 가장은 너무 많은 상징성의 표현이
글 속에 함축되어질 경우 무슨 말인지
들어도 모르지요.
우리는 직접 표현하기가 어려워
상징성의 표현 방식을 쓰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는 상징성 만이 표현이 가능하기에
그렇게 표현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상징성을 쓰게 됩니다.
<인사 치레>
우리는 남들에게 인사를 받게 되는 경우
아무에게나 인사 치레에 관한
관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 중에는 이기적인 계산이 깔려
접근하려는 경우 그의 인사는 많은 술수가
섞여진 속임수가 처세술이라는 방식에 의해
자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인생들이 오늘도 그렇게 살며 처세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것을 단죄하지 않았지요.
악마처럼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된
한도 안에서 자신의 이익에 부합된
남에게 충실을 기했을 뿐 그런 상황에서
속임수 기만술에 따른 그런 처세 방식이
사람을 위했다고 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일부의 인생이 위장에 능하지만
결국은 다 드러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인생의 결실이 없었던 이유>
너무 희생에 따른 수고가 많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런 결실이 없었지요.
<우리는 기존의 결집된 텃세를 깨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나에게 출입을 제한해 삶의 결실을
허락하지 않을 경우
자신의 결단과 의지가 있어
심사숙고 하고 일을 추진하려고 시도하고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 간다고 해도
그의 피나는 노력의 대가에 상응하는
정당한 열매를 거둘 수 없게 된다는 점을
깨우쳐 가게 됩니다.
우리는 피나는 노력하고
노력에 대한 추수를 기다리지만
현실은 시대를 주관하는 그들의 의지대로
시대를 그들 마음대로 돌려갈 뿐입니다.
즉 타인 들에게 분배 지분을
타인과 결코 나눌 의지가 없었고
그런 결실을 남의 집단들에게 허락하지 않아
<독식 횡포 사회가 오지요>
모든 사람들이 혜택으로 누려가야 할
삶의 지분 까지도 그들이 송두리째
남의 지분까지도 훔쳐갔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노력의 대가를
정상적으로 거두는 것을
시대가 텃세를 부려 풀 수
없는
비밀의 비번을 잠가 버려
사회의 진출 기회로서의
상류 계급 사회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들 끼리 만의 이익 만을 주로 나누고
허용해 왔을 뿐이지요.
이것이 시대의 불공평성을 낳았지만
시대는 그들 만을 위한
인생의 편익을 취하기 위한
치우쳐 진 자신을 위한 인생의
수레
바퀴를 돌려갈 뿐이지요.
Microsoft
OneNote 2016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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