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내 사진
< MY SPIRIT IS RAISED TO THE TEMPLE OF HEAVEN > My spirit was lifted up so high and very quickly in that I reached the temple of God in heaven I saw Jesus Christ standing in the center of the temple in heaven. I was directed by the Lord in the temple of heaven to continue the work of God I am in the process of delivering The Word Of Heaven today. 2020년 현재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상에서 온라인 설교 사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덕수 목사입니다. 사역자의 영이 천국으로 올려져 천국 성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후 주님의 명령에 따라 온라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통 신앙과 한국 기존 교회들과의 신앙적 기준에서 개념 차이가 나고 있는 부분들에 관해 한글 개역 개정판 성경과 NIV, NEW KING JAMES VERSION BIBLE을 상호 비교해 가며 설교 사역을 진행 중입니다. I will tell the kingdom of heaven about the will of God who is speaking to him personally about the life of modern believers living today.

2018년 5월 12일 토요일

어두운 인생의 시련의 터널을 지날 때


2018 5 12일 토요일
오후 10:00
 TODAY'S GOD MESSAGE

             ( 2018-5-12 토요일 )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 SOUTH  KOREA , SEOUL
          다윗 온라인 교회

            PASTOR. DUK SOO     YOO
               유덕수 목사



       < 오늘의 말씀 >

 *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건설을 위한
      우리들의 새로운 신앙 선언

우리는 주의 안에서 허락된
새롭게 변화된 신앙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과거 신앙에서 탈피한 새로운 인생의 길을
현대인을 위한 신앙의 바른 길로
제시하게 됩니다.

이런 신앙의 길은 우리가 변화된 현실을
맞아 적극적으로 나서 신앙으로 대처해 가는
새로운 인생의 길을 우리들의 힘으로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인생을 인생 답게 만들어 가는
그런 신앙의 과정의 길을 스스로의
신앙적인 결단에 따라 다시 펼쳐
있음을 말합니다.



 <인생 스테이지 만으로는
나의 비통한 삶의 어두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어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어떤 가장의 숨겨진 비통과 슬픔>
집안의 남편으로가장으로서
아빠 가장은 과거의 치유될 없는
깊은 인생의 상처와 고통 뿐인 현실에서
비정상적인 생활의 깊은 어둠의 시련의
종적을 남겼지만,

그렇게도 그동안의 수십년 간의
기나긴 삶은 나와 가족들에게 까지
슬픔을 남기기도 하며

나의 개인적인 조차도
갈기갈기 찢어 놓게
나의 찢겨진 상처는
치유를 요구하게 되지만 개선되지 않는
나의 낮춰진 진보가 없는 삶이
아직도 나를 거듭 조롱해 가며
주님을 행한 나의 신앙의 열심을 키질해
왔지만

우리는 그런 인생이 정상적인 삶인
알고 오늘까지 그런 어려운 현실에 애써
나를 시대의 기준에 맞추려 적응하려
살아 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자신을 지나치게 
구시대의 제도적 기준에 맞춰 희생하려 들며
현실에 자존심도 버리고,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나와 무관한 시대의 기준에
맞춰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나를 위해 새로운 인생을 열수 있는
새출발의 이루기 위한 인생의 길로
들어갈 있어야 합니다.
 

생존을 위한 자구책
<현시대에 맞는 신앙적인 새로운 시각으로
시대를 다시 보아야 합니다>

다윗 교회는 기존 교회와
다른 신앙적인 가르침의 기준의
차별성을 갖게 됨을 깨우쳐 가며
시대를 향한 시대적 기준으로 선언하게
됩니다.



<신앙과 부딪치는 불신의 삶의 현장>
우리는 기존 교회의 신자들의 삶의 가치관들과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의 인생의 가치관들과
현장에서 부딪칠 때마다 심히 괴로워 하게 됩니다.

매우 현실적인 생존 논리적 시각의
대립적 차이점이 벌어지는 순간 
간격을 좁힐 없는
괴로움의 순간이 오게 됩니다.

집단 간에 상호 대립되는 이해 관계상의
충돌은 삶의 심각한 충격적인 현장 상황을
낳게 됩니다.

우리는 약자로 고통속에서
슬퍼하며 살았던 나의 과거를 보게 됩니다.



<인생 스테이지, 삶의 국면2>
신앙인들이 불신 세대들에게
경제력을 선점 당한 주도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항상 강자가 주도하는 악한 시대 안에서
경쟁력이 뒤쳐지게 상황을 호소하지만

그런 상황에 처할
시대적 신앙관의 잣대는
삶의 경쟁력을 회복시켜 가기 위한
아무런 해결 능력을 제시하지 못하게 뿐입니다.


우리는 시대적 신앙관의 잣대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탈피할 만한
새로운 인생의 해결책을 낳지 못했으며

현실성에 입각한 생존 논리를 주장하는
세상에 대해 맞서 악인들의 공격에 대항하는
신앙적 대처 능력이 매우 부족했음을
가르쳐 언급하게 됩니다.

< 우리는 그럼으로 시대를 보는
삶의 신앙적인 시각을 바꿀 필요성이
제기 됩니다>


* 시대의 경쟁력으로서
삶의 개인적인 적응 능력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 관해서 여기서

일반인들의 삶의 시각과
신앙인들의 삶의 시각과
구체적인 인생관을 달리하는
차이점들을 거론한
실례를 들어 말해 봅니다.

각자의 인생들이 서로 달리 느끼는
현실을 보는 생각과 관점의 차이를
비교해서 살펴 봅니다.

시대의 흐름을 바라 보는
삶의 개인적 적응 능력을 다르게 평가하는
관점의 차이로서 같은 상황을 달리 평가함을
말하게 됩니다.


<여성 신자들의 평가>
신자들의 심중에 숨겨진 표현을 빌자면
애는 ' 까지고 까진 아이들이야! '
이렇게 시대적 감각에 빠른 아이들을
나쁜 아이들로 평가하게 되지요.


<시대의 평가>
그러나 반면에 신앙권과는 달리
시대는 그런 아이들이
가장 탁월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아이들이 가진 장점으로서
오히려 세상을 정확히 알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아이들이라
우월하다고 생각하지요.

교회는 그렇게 시대와 같이 항상
시대의 조류를 타고 함께 흘러가지 못했기에
시대는 항상 교회를 평가할
시대에 뒤떨어진 쳐진 집단이라
간주해 왔을 뿐입니다.

우리는 다윗 교회 신자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기준이 아니라

시대보다 항상 앞서는
인생의 삶의 기준을 소개하며
주님의 안에서 새롭게 길을
제시해 열게 됩니다.

우리는 신자들을
새로운 시대의 앞선 기준으로
가르치게 됩니다.



<기존 교회와 다른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시대에 흐름에 기초한 신앙관을
새롭게 현대적 시각에 맞춰 수정 제시해
봅니다>

우리는 시대를 위해서 시대 안에 들어가
시대 안에 주의 나라를 세울 있어야 합니다.

시대 안에서의 주의 나라를 세우는 것은
차후에 설교 말씀으로 공개될 예정임을 밝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 교회의 신앙적 시각과는
다른 신앙적인 새로운 삶의 관점들과 측면에서
새로운 신앙적 기준으로 글로벌화 되어진
시대를 두루 살펴볼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존 교회에 요구되는 점으로
시대 감각에 뒤쳐진 낡은 신앙의 오래된
신앙적 폐습들이 현대 신앙인들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음을 지적하게 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신앙을 고쳐
있어야 합니다그런 입장에서 현대적 신앙에
개혁적 신앙관의 입장을 사수해 있을

시대에 너무 동떨어진 현실적 감각에 뒤쳐진
시대적 신앙적 폐습들을 개선시켜야
시대 안에서 정상적인 주의 나라를 세워갈
있다는 점입니다.

지구촌의 글로벌화 되어진 과거와 달라진
변화된 현실을 보는 새로운 인생관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새로운 신앙적 시각에서
수정해 다시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가르치고

이를 주의 안에서 새롭게 수행해 감으로
새로운 변화된 글로벌화 되어진
지구촌의 현실에 적응할 있는

현대적인 신앙 안에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가르쳐 있음을
정당한 개혁 신앙을 위한 근거로 제시할
있게 됩니다.

기존 교회는 거대 권력에 편승하거나
야합해 가는 시대 권력에 동화된 방식으로
우리들 만의 개인적인 삶을 개성을 묵살해
막무가내로 시대에 굴복시켜가려 행위에
동조했었고 희생시키려 들었지요,

또한 천국을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의 눈이 닫혔기에
오늘의 변화된 시대적 현실에 적응하는
쉽게 대처해 가는 방식을 몰랐을 뿐이지요,

우리는 새롭게 시대적 상황에
적응해 가기 위해 노력해 가야 합니다.

과거사의 주역인 그들 집단들이 지켜온
낡은 구시대적인
그들 만의 독선적인 오래된
낡은 신앙적 기준에 입각한

그들 만의 낡은 기득권 세력에 편승한 만을
아직도 고집하려 든다는 사실을
독립적으로 시각으로 벗어나야 하며
현대적 감각에 맞도록 수정시켜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게 됩니다.


<낡은 시대에 계속 머물고 싶은
복고적 생각에 빠진 인생들>

기존 교회의 다수와 어떤 낡은 뒤쳐진 인생들은
시대에 항상 뒤쳐진 인생의 결과를 자신들 만의
공적으로 내세우게 됩니다.

시대에 숨겨진 자취없이 사라진
남의 공로 마저도  자신들 만의 공적의 탓으로
빼앗고 자기들 만의 공로로 자랑하며

아직도 변화된 현실을 거부하려 들며
우리들의 새로운 인생을 열어야
시점에서 조차 시대적 감각만을
고수하려 들며

현대적 삶의 시각에 적합한
삶의 기준과 일치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오히려 낡은 잣대로 되려
가르치려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우리들 만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자체 해결해 건설해 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다가올 미래 시대를
이끌 있게  경우
기존의 과거적 신앙에 머물던
과거사의 주역들인 그들은

몹시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그릇된 야합하는 인생을 살게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선언할 있게
됩니다.


<구시대적 신앙관은 철폐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낡은 구시대적 개념의 사슬에
꽁꽁 묶여 있는 배타적인 기존 교회나
기존 그런 낡은 시대적 감각과
의식에 매여져 있는 기존 교회의
신자들을 너무 의식해 필요는 없게
됩니다.

남들은 우리들의 신앙과 연결된 현실을
보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기존 교회의 신자들은 되려 자신들이
우리들 보다 항상 바른 인생을 살았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기존 교회의
어리석음에 집착한 구시대적인 신앙적 기준을
부끄럽게 만들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경쟁력을 갖춰 활기차고
능력이 살아난 교회로 새롭게 다시 일어날
시대의 기득권 세력들에 앞서
주도권을 행사해 있을

우리를 보던 그들 기존 교회가
우리를 부끄러워 하게 되는 날을 만들
있게 됩니다.


   
우리는 여러 사회적인 모든 계층들을
대상으로 폭넓게 사역하게 됩니다.
우리는 신자들만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 이방인을 향한 선교 개방성 유지 >
우리의 설교 말씀이 항상 신앙적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고 해도

기존 교회와 다른 신앙적인 관점을 포함해
가르칠 경우 많은 기존 신앙과 무관한
이방인들도 새롭게 들어올 있는 길이
활짝 열려질 있음을 선언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존 교회, 기존 신자들이
배우지 못했던 많은 천국 지식에 기초한
신앙적 확장 개념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기존 교리를 고쳐
현실 논리에 입각해서 다시 수정해
가르치게 됩니다.

우리의 생활적 현실과 접목된
천국의 생활적인 측면에서 강조되는
현대적 글로벌 상황을 고려한

천국 신앙의 지식들과
삶의 국면들을 직접 연결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함께
천국의 지식들을 자세히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경쟁력을 갖춰
시대 변화에 적응해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시대를 앞서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가장 앞서 반영한
신앙적인 대처 방식으로 현실을
미리 대처해 있아야 합니다.

우리는 향후 다가올 미래적 상황을
보다 빨리 미리 가르쳐 향후 다가올
미래의 인생을 보다 신자들로 하여금
빨리 준비해 가는 그런 길을 선택적으로
걸어 있도록 독려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실
우리를 위하시는 성령님의 가이드 라인이
우리들이 누려야 행복한 삶의 연장선 상에서
현실과 연관된 천국 지식을  가르쳐 가시게 됩니다.


나의 바쁜 개인적 삶과 일과 속에서
개인적 삶으로 내가 걸어오고 그동안 추구해
신앙적 관점과 시각이 현실론에 앞선 사악해진
어둔 현실이라는 생존 논리를 이기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를 적극 대처해
만으로 처리해 가기 위한
생존적 측면에서 시대적 신앙적인
낡은 가치관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하심을 따라서

신앙적 룰도 다시금 현대 사회에 맞게
변화하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선언해 가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현실의 생존을 위한
신앙적인 대처 방식과
천국 지식을 함께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미래적인 삶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천국의 상황을 전하고
사역을 통해 선지 사역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선지자 사역자라고 자처하지는
않게 됩니다.


다윗 교회는 남들보다 뒤쳐져
남을 뒤따라 가지 않게 됩니다.
 
시대적인 낡은 신앙적인 감각에 머물며
후퇴하는 기존 교회들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낙후된 삶을 신앙의 길로 제시해
이끌지는 않습니다.


<신앙의 어리석음에서 탈피하는 >
기존 교회나 시대에 속한 낡은 인생 들이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구시대적인 뒤쳐진
인생의 길을 따라 가는 길을 다시 선택해
필요는 없게 됩니다.

우리는 기존 교회가 그런 신앙적 패배만을
거듭해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항상 시대와의 경쟁에서 뒤쳐져 왔었던
구시대적 신앙의 길을 현시대에 맞는
올바른 신앙의 길로 다시 제시할 필요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기존 교회의 신자들은 항상 시대에 뒤쳐져
시대에 속한 남들이 이미 살았던 과거의 인생을
뒤늦게 한발 늦춰서 뿐이었다는 것을
시대는 알고 있었지요.


<기존 교회들의 착각>
시대가 이미 과거에 살았던 인생을
기존 교회가 뒤늦게 뒤쳐져 뒤따라 가면서
그렇게 현실 적응력에 결핍된 
구시대적인 의식 만을 여전히 아직도 고집하려
드는 그런 인생의 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게 됩니다.

아직도 과거에 계속 머물기 만을 원하는
과거에 번영의 영화로움에 도취한 인생들은
그런 보수적인 신앙의 길에서
그들의 신앙의 길이 항상 바른 길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그들 만의 참다운 인생이라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의 길이 그들 자신들 만의 
안목에만 옳다고 여겨질 현실은 그들을
시대의 주역에서 배제해 왔을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시대는 낡은 신앙의 길을 걷는 시대의
그들의 길을 너무 어리석고 시대에 부담을
끼치는 시대에 항상 뒤쳐진 인생이라 말하고
있지만 도취감에 빠져서 오늘도

그들은 여전이 시대에 항상 뒤쳐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그들의 고집스러운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거룩하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우리는 악인들의 인생을
타도하고 멸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를 위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내가 살게
남과 비교할 필요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오직 나에게는 인생을 위한
삶의 선택적 기로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시대의 낡은 기준을 탈피해
시대에 맞는 변화된 기준에 근거한
결정을 수정해 다시 내려 가야 합니다.

신앙적 기준을
시대적 글로벌화 되어진
새로운 기준으로
새롭게 변경시킬 있을

시대에 앞서갈 있는
삶의 개인적 적응 능력을
갖출 있는 선점권을 확보를 통해
쉽게 현실 성공과 번영의 기회를
다시 열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시대 안으로 들어가
각자가 독립해 일어서서
시대의 기준을 부끄럽게 만들고
우리들의 인생들 보다
시대를 뒤쳐지게 만들 있어야 합니다.

기존 교회는 시대보다 항시 뒤쳐진
열매 없는 신앙적 상황을
보수적이고 거룩한 신앙의 길이라고
착각해 왔음을 한탄하게 됩니다.

우리는 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는 점을
진단해 가르치게 됩니다.

우리는 개혁적 신앙의 관점에서
다시 시대 안에 직접 들어가
주도권을 취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시대에 앞서가는
삶의 경쟁력을 갖춰 가기 위해서
시대적 상황에 걸맞는 방식으로
새롭게 적응해 가는 방식을 제시하게 됩니다.

기존 신앙의 관점과 다른
신앙관으로 현실을 적극 대처해 가는
방식으로 냉혹하고 처절한 피를 뿌리는

생존 게임의 정글에서 적응력을 갖춰
생존할 있는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신자들은 서로 힘을 합쳐 길을 열고
냉혹하고 살벌한 피를 부르는 현실 안으로
들어설 있어야 합니다.


< 기존 교회들의 보수적 시각의 착각 >
< 항상 시대보다 늦은 인생을 살다>

( 주도권을 상실한 과거의 교회들 )
불신의 시대가 이미 그들의 경쟁력에 앞선
삶을 통해 과거에 시대를 선도해 갔다고
자부해 왔지요.

기존 교회들은 과거사적인 삶의 기준을
오늘의 현실로 뒤늦게 살면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높여 거룩하다고 자처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품는 것을 버려야

낡은 신앙적 폐습들을 끊지 못하는 시행착오적 
자기 도취적인 신앙적 오류에서 벗어날
있게 됩니다.


현대 신앙인인들이 시대적 흐름을
엄연한 생존 논리의 흐름으로 보지 못할

시대를 호령하는 주도권을 인생들이
시대적 감각에 뒤처진 낮춰진 신앙인들을 치고
따돌리게 되지요.

그렇게 항상 시대에 뒤쳐진 인생의 만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로 여겨
시대의 꽁무니 만을 뒤늦게 따라가며
불신 세력권들이 주도하는 길에서

강자 세력권에 부화뇌동 하는 만을
걸어가면서  그런 인생의 길을
감지덕지 하면서 살게 된다는 사람들이
많은 비굴한 신앙적 현실을 보게 됩니다.


기존 교인들의 비굴한 처세 입장과는 달리
시대는 그들의 뒷전에서
그들을 뒤쳐진 낙후된 인생들이라고
교회를 향해 비꼬며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시대는 기존 구시대적 신앙 안에 속한
낡은 인생들을 항상 시대에 뒤떨어진
인생들이라고 기존 교회들을 비꼬고
조롱하게 되지만

시대는 이미 뒤떨어진 인생을
그들과 시대가 함께 같이 어울려
필요가 없는 후진 인생들이라고
혹평하며 매몰차게 내버리게 뿐인
가혹한 현실을 이루게 되지요.


<과거의 한국의 경제력 집중은 불신 세대들의 >
오늘도 여전히 지속되는 경제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재벌 집단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집단들로 탄생한 집단들이 아님을 깨닫고 가야
합니다.

과거의 정치 권력에 편승해서
한국의 경제계를 호령한 이방 세력권들인
재벌 권력들은 그들의 집단을 이루고
있을 뿐입니다.

불신 세력권을 중심으로
그들 만의 재벌 권력의 경제 권력의 깃을
그들의 집단을 위해 집행해 가며

강압적인 독재적 권력의 힘에
편승해 경제력의 지분을 독식해 사는
경제 권력을 세워 갔을 뿐입니다.

상호 간에 분배 지분을 그들 만을 위해
취하고 나누는 형태를 취해
불신 세대들이 경제권을 쥐고서
한국 경제를 주도해 가는 그들 만의 경제 권력의
독식 구도의 비참한 현실이 아직도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경쟁에 뒤쳐진 현실 상황만을 드러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의 길이 열려지게 됩니다.

시대는 기존 교회들과는 크게 다른
신앙적 기준을 원하고 적용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글로벌화 되어진 변화된 잣대 아래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기존 낡은 시대적 가치관에
입각한 다른 신앙적 시각과 관점에서 재조명해
바라볼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신앙적 기준으로
앞으로 다가올 인생을 미리 앞서
대비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호령한 구시대 정치 권력들의
기득권을 비호한 불신론을 수호하는 
우리와 다른 길을 걷는 불신앙의 집단을 위해서
희생하면서 필요는 사라집니다.

남이 아닌 다른 집단들의 권익이 아닌
나를 위해서 나의 신앙적인 집단의
권익을 위해서 있어야 합니다.

남을 위한 타인들의 집단들이 주도해 가는
불신앙의 집단이 경제력 권한을 행사해 가는
그런 남을 위한 신앙적 행진을 지속할
필요성은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나에게 계속적인 슬픔 많이 남겨지는
엑스트라급 조연 들러리 인생을
판단에 따라 나를 위해서 끊고
스스로 멈출 있어야 합니다.

시대의 인생의 낡은 사대적
가르침의 길을 따라 필요성도 사라집니다.

구시대적인 봉건 권위에  굴복하는
다시 그런 비참한 인생을 반복해 가면서
필요도 없게 됩니다.

세상의 정치 권력을 행사해
집단과 남들을 위해 내가 입을 다물고
희생하면서 권리 행사를 빼앗겨 가면서
필요는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런 새로운 인생의 길에 관해
시대가 강요해 그런 개인의 행복한 삶을
제한하려 드는 집단들의 강압에 눌려져
힘을 합쳐가지 못했기에 묵묵부답으로
우리와 상관이 없는 우리들에게 지분을
허락하지 않는 남들을 위해
낮은 푼돈 지분에 묶여 밖에 없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억울함의 말을 열지 않았고 항거하지 않았기에
집단을 위한 경제 권력들과
정치 권력이 강압적인 요구에 굴복 당할
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인생의 실패작 현실을 낮는 구체적 원인>
하나님의 뜻을 신앙인들이 지키려 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섬기려 들지 않고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임하게 되는
삶의 해결책의 열쇠를 여는
영적인 안목의 눈이 닫혀져
현실적 삶의 대처 방식을 상실한
안목의 눈이 닫혀져
기도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려지지 않는 상태가 지속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 위하실 때는
나를 위한 가장 행복한 인생의 길로
이끌어 가실 있는 능력을 얼마든지
크게 나의 만족도를 훨씬 넘어서 행사하실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실 있다는 점입니다.

다만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 우리들의 어려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안에서 인생의 활로를
있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행복은 내가 찾아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의 결단과 실행을 통해서
나의 인생의 목적을 되찾는 길로
새롭게 내가 성령의 인도함에
이끌려 있을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게 됩니다.

나는 길을 있어야 합니다.
권리를 찾을 있어야 합니다.

나를 위한 길은 내가 결정하는 삶의 길에서
남에게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는
선택적 삶의 권리가
내게만 허용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공의 길을 열기 위한 삶의 현실적 제안>
만을 위한 나의 개성적 특성을 살리는
하나님의 안에서 차별적으로 허락된
나에 걸맞는 특성화된 삶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성도가 자신의 신앙을 최우선시 하고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활속에서
실행해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활로의 길을 여시는 축복을

하나님께로 부터
주님의 이름으로 허락 받을
있게 됩니다.

우리가 길을 실행하면서 걸을 있게
복된 삶의 경쟁력을 갖춰갈 있는
다시 태어난 새로운 활기찬 인생으로
삶의 활력이 넘치는  나를 위한 신앙의 길로
들어갈 있게 됩니다.

우리들에게 다시금 길을 열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생의 삶을
허락하시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있어야 합니다.


<생존의 활로 모색의 되찾기>
하나님의 가운데서 충분히
인생의 활로의 길들이 열려지고
길이 열려질 길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채택하고 수용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존 교회의 신자들이
우리를 헐뜯는 것을 용인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길은
자신을 위한 길일 뿐입니다.

악령의 힘이 지탱하고 있는
악인들의 참소는 허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길은 힘으로 일어나
독보적 인생의 삶의 기회를 내가 획득할 있는
정당한 삶의 권리를 보장하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한 인생의 특화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허락된 나를 위한 길로
나에게 개인적으로 특화된 인생의
개성 있는 삶의 방식을 펼쳐갈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적인 법적으로 보장된
개인적 삶의 권한과 권리를 지킬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가타부타(―)
자신의 이익의 기준으로
우리를 사적인 인생의 권한을 침범해
비난하거나 헐뜯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동행을 허락을 받고
악한 인생들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독자적인 개인적 삶의 권리를
우리의 현실 안에서 되찾기 위해
힘을 합쳐가야 합니다.

개인적인 독자적인 삶의 행보로서
신앙적 기쁜 인생의 길을 걸을 있어야
합니다.

<부당한 간섭 행위>
나의 선택에 의한
정직한 신앙과
인생의 길이

남들에 의해서
타의적으로
결정될 수는
없습니다.

타인의
부당한 침탈(侵奪)
간섭 행위로

나의 사적인
인생의
삶의 권리를
남들이
침범될
없음을 주변이 알도록
선언해 가야
합니다.

 <신앙적 권리>
우리들의 선택적
삶의 권리로서
나를 위한 신앙의 길이

남들의 기존 낡은
구시대적 신앙적
잣대에 의해서 함부로
훼손되거나 경시 되어져

마음대로 낮게
평가되어져
함부로 비난의 대상이
없음을
선언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결정으로서
나를 위한 삶의 권한을
신앙적 정당한 권리로
지켜갈 있게 됩니다.



<나를 위한 행복한 인생의 >
우리는 과거에도 언제나 우유부단한 내가
나에게 맞는 가장 적합한 인생의 길이
따로 존재해 왔었음을 알면서도 과감히
실행하지 못했던 과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보류된 현실>
그러나 내가 실행하려고 해도 현실이
항상 뒷받침 해주지 못했던 충분한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던 제약에 갇혀진 현실에서
살았지요.

인생의 기회는 짧은 기회 만이
있을 뿐이며 다시 되돌릴 없는
찰나의 인생 만을 뿐임을 항시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인생 ; 복이 열려지는 신앙인들>
우리들의 인생들 가운데에는 남보다 월등한
경쟁력을 갖출 있는 그런 준비된
신앙인들도 그들 만의 강한 시대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열등한 다른 집단들의 인생이
우리들의 삶의 경쟁력 보다 뒤쳐지는 경우
남들은 그들의 낡은 잣대의 기준 만으로
우리를 공격하려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이 적들에게 공격당할 >
우리가 세워 주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집단들도 만날 있습니다.

만약 그런 어려운 상황이 닥쳐 온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삶의 권리로서
우리는 해코지 하고 도전하는
그들을 치고 멸할 있는 정당한
방어적 권리를 지켜갈 있게 됩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인생을 지탱할 있는
자신이 삶이 활동할 있는 삶의 영역이
남들에 의해서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음을
강력히 선언해 그런 상황에서 부딪치는
삶의 문제들을 강행 처리해 해결하게 됩니다.


악인들은 스스로를 선하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 악마적 속성을 알고 가야 합니다.

<악마가 천국을 대적하는 순간
악인들은 악령의 권세에 편승해 자신의 악마적
행위를 의롭다고 선언하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알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은
그들의 인생 본질에 따라
숨겨진 속임수를 쓰거나
항상 악마적인 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간주하려 들게 됩니다.

그들 중에 일부는 악을 행하는 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옳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악마의 잣대가 악의 행위를 선으로 주장할 >
때로 순수한 신앙의 길을 우리가 고수하려
악한 그들이 우리의 신앙적 원수가 되어져
그들이 저지르는 악한 행위를
선한 행위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일부 신앙인들은 이처럼 타락한 악한 세상속에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거듭 듣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신앙인들이 강한 원수들을 만나게
그들의 행동속의 숨겨진 배경에는
타락한 악하고 교묘한 악령의 지시가
그들에게 임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신앙인들이 받게 되는 심적인 괴롭힘으로
악마의 참소를 피할 없는 고통의 길을
걷게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 신앙인들의 맹점
<악마가 주도하는 현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악에 눈을 감고서 악을 오히려 선으로 선언하고
악의 편을 종종 들게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생존 게임이라는
몸서리치는 현실을 냉철하게 평가하며
현실 생존 논리적 시각으로
이해 관계의 시각에서
현실을 다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너무 악한 양심이 마비된
천국을 대적하는 사악한 인생들이
그들의 삶의 근거지를 무한 확장해
지구촌의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행동을 막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악하고 더러운 악령들의 지배 권세가
어두움이 지속되는 악한 현실이 낳고
전개 시켜갈 그들의 행위가 사악한 악령들의
권세에서 기인한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힘들에 의해서 지배 된다는
현실을 깨닫고 지혜롭게 때로는 강하게 대처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적인 개인적 삶의 권한이
악마들에게 무참히 빼앗겨질
버려진 인생처럼 살게 뿐입니다.

우리는 칠흑(漆黑)같은 어두움의 장막이
드리워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능력이 없어서
그냥 모르고 살았을 뿐입니다.


<초록(抄錄) 동색(同色)>
악인들이 오직 자신들 만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 만이 옳다고 입장을 수시로 바꿀
세상은 그들의 생존적 이익을 나누기 위해서
악인들의 악한 행위를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살게 됩니다.


<호된 신앙적 신고식>
바른 신앙인들은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사악한 악마적 근성에 기초한
악마 본질이 가면으로 가리워진 경우
악마 같은 악인들이 주도하는 현실에서
그런 악인들의 악한 인생의 잣대에
호된 인생 신고식을 치룰 밖에 없게 됩니다.

악한 인생들의 삶의 기준은 언제나
악마의 나라 안에 속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 악인들의 호령하는 시대 >
악한 인생을 살고 있는 그런 집단들이
악한 것과 선한 것을 항상 꺼꾸로 보는
악을 정당화시켜 살게

시대는 악의 세력에 항거하지 못하는
상황에 던져져 고통속에서 살면서
매우 어두워진 현실을 피할 없게 됩니다.

그들이 지구촌을 너무 집단적으로
악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살게 되지만

우리는 그런 악한 인생들의 악을
악으로 단죄하게 됩니다.

세상은 눈을 뜨고
그들이 평소에 악한 짓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굴복하며 눈을 감게 됩니다.

그들이 저지른 악한 행위들이 결코
용납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악한 행위가
절대로 천국에서 요구하는
합당한 천국 신앙의 기준을 충족할 수는
없게 됩니다.


악인들이 득세할 천국의
선한 의로운 행위가 강행될 없다는 것을
시대는 알지만 이를 알고도
말을 꺼내지 못해 서로 끙끙대는
상황에서 살게 됩니다.

악과 선이 뒤바뀐 전복된
악한 지구촌의 사악한 현실을 보지요.

악마는 우리가
그들이 멸망한다는 것을 모르고
사라져 가게 됩니다.



Microsoft OneNote 2016에서 작성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천국 신앙 개념

성령 인도에 민감한 기도

  1. 성령 인도에 민감한 기도   많은 미국 교회 신자들은 기도할 때 자신의 생각이나 바람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 중에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이나 상황을 위해 즉시 중보기도를 하거나,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과 확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