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3일 월요일
오후 2:56
TODAY'S GOD MESSAGE
(
2017-7-3)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PASTOR. DUK
SOO YOO
오늘의 다윗 성 온라인 교회 말씀
작성자; 유 덕 수 목 사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의 지혜)
현대인을 위한 신앙의 길잡이로서
현대 사회의 새롭고 건전한 사회를 탄생을 위한
천국의 기준을 여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하나님 말씀을 시작합니다.
<신앙에도 그 각자의 신앙적 행위에 따른
책임이 반드시 그에게 뒤따르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갈 때 처절하고, 슬프고, 괴롭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한 원인을
자세히 신앙적인 관점에서 소개해 그 원인을 규명하고
슬픈 인생의 길에서 닥쳐온 저주가 풀리지 않는
실질적인 신앙적 구체적인 원인과
이유에 관해 설명을 시작하게 됩니다)
* 소결론
(저주 속에
살게 되는
어떤 신앙인의
삶)
그가 하나님 성령을 따르지 않고
사단의 속임수의 영을 신앙의 대상으로
속아서 착각해 성령의 역사로 잘못 믿고
계속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을 위한 새로운 신앙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성령의 가르침을 의지하는 시간입니다.
사람은 사단의 속임수의 고단수에 속아
사단의 지배하려는 드는 속성에 속아
각자 어리석은 행위를 따를 그를 유도하려 하는
사단의 술책에 속는 수가 많게 됩니다.
죄를 촉발하는 자신의 판단의 실수로부터
돌이켜야 할 많은 산적한 신앙적인 문제점들이
파생되어지게 되고 있음에 우리는 그 심각한
신앙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게 됩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을 위한 관점하에서만 보려 들며
모든 것을 자신의 일방적인 기준으로 만 생각해
일방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위한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관의 판단을 기준으로
항상 자신 만이 옳다고 바라보려 들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의 길에서 많은 신앙적 실수를
자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게 됩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려하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생각하려 들 때
그는 자신의 판단의 시각이
매우 어두워진 사실을 모르게 됩니다.
맹목적인 맹신의 관점을 낳은 실수가 그와 같지요.
자신의 기준이 항상 옳다고 그가 여길 때
그의 대뇌 판단 기능상 많은 문제점을 낳는
오류가 발생하게 되지요.
그의 사물에 관한 지식 부족으로 인한
인지 판단력 부족에서 오는 신앙적 오류로서
정확한 신앙적 판단의 눈이 가리워진 사실을
모르게 되지요.
아직도 그는 자신의 관점으로 만 생각하려 들 때
어제도 오늘도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 만이
항상 옳다고 여겼기에
그를 향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의
전체적인 맥락 하에서의
천국의 섭리를 거부하게 되지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기를
스스로 위해서 거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런 신앙의 빗나간 길에서는
눈이 가리워져 결코
하나님의 뜻을 거의 모르게 됩니다.
오늘의
기독교의 그릇된
신앙으로서
그 문제의 촛점의 핵심은
신앙인들이 자신만의 그릇된 신앙적 행위속에도
그 책임이 항상 그 자신에게 뒤따르게 된다는
점을 거의 인정하려 들지 않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현대 사회의 신앙의 한 분파를 이루는
어떤 그릇된 신앙적인 가르침들이 있지요.
성령의 거룩한 하나님의 진실성에서
출발한 개념이 아닌 사단의 악령들의 속임수에서
출발된 신앙적인 그릇된 개념들도 있게 됩니다.
그러한 사단의 가르침들을 잘못 파악해 정도가 벗어난
길을 하나님의 뜻으로 잘못 파악해 따르게 되지요.
그가 성령의 역사로 잘못 알고 것들
|
다수가
속아서 따라가는
악령의 역사를
보고서 그는 속게
됩니다.
이리가
흰 밀가루 분을
발랐기에
마치 순수하고
정결성을 유지하는
흰 것처럼 보이는
사단은
사람의
어리석은 마음의
영적인 눈을
속이게 되지요
|
* 사단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빙자한다고 해서
사단의 악령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가
될 수 없지요.
사단의 악령의
가르침을 따를 때
그에게는
'처참한 저주'
인생의 파멸이
뒤따르게 됩니다.
사단은 속이지요
성도는 신앙의
연단의 기간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파멸에 던져진
사실을 수십년이
지나서 뒤늦게
알게 될 때
속임수 사단의
실체를 알게
되지요.
|
|
사단의 실체는
속임수의 역사를
말합니다.
|
거짓의 아비
사단은 속임수의
대가입니다.
|
사람의 속임수 속에서
달콤한 미끼 속에 숨겨진
신앙적 거짓되고 헛된 가르침 들은
그 사단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가득한
인생의 파멸을 낳게 됩니다.
오히려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사단의 기만적인 속임수의 역사가
철저한 신앙적 본질적 행위로 자리잡게 될 때
사단의 나라를 착각해
본질적으로 동질로 여겨 천국의
하나님의 나라의 성령의 역사의 발현으로 알고
속아 잘못 알고 따르게 되지요.
그는 그 사단의 악령이 인도하는 길을
잘못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의 인도하심으로
간주해 스스로 자발적인 신앙의 행위로
따라가게 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여하간 겉으로는 그런 사단의 속임수의 역사가
천국의 진정한 가르침을 전하는
천국의 역사로서 성령의 역사라고 표방했기 때문에
사단의 속임수의 숨겨진 본색 그 실체를 모르고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관해
무지한 많은 신앙안의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빙자한
사단의 속임수의 영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는 수도
많게 된다는 점입니다.
* KEY
POINT
성령의 역사는 천국의 축복을 현실속에서
실제적 현실로 낳을 수는 있으나
축복이라는 신앙의 미끼를 던져서
성도로 하여금 큰 불안과 저주 상황을 낳는
속임수를 쓰지 않습니다.
(신앙인 들이 잘 인정하려 들지 않는
주요 신앙 관점 포인트)
거룩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따르는
천국의 길을 따라 걷는 성령을 의지하는
신앙에서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빙자한
사단의 속임수의 역사를
성령으로 잘못 알고 성도가
마귀 악령의 속임수의 속아
그가 사단의 가르침을 식별 못하는
무분별함 속에 사단의 가르침을 뒤따라 갈 때는
신앙적인 결과로서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그에게 복된 현실을 낳는 것이 아니라
감내하기 어려운 인생의 갖가지 괴로움과
가난과 슬픔 만이 많은 버려진 존재로서 살게 되는
저주스러운 현실 만이 다가오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일부 인생으로서 욥기서 안에서 알려진
주의 종 욥과 같은 시련을 겪는 예외적 인생도 있습니다)
즉 천국의 사역자들이나 하나님이 지정한
특별한 섭리안에 시련속에서 던져져 살게 되는
일부 소수의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가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실수로
천국이 성도들의 신앙상으로 잘못된 그릇된 행위로서
그 신앙상의 병폐를 낳는 그 처절한 심각성을 지적해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사단의 악령은 그에게 달콤한 미끼로 접근해
그를 악령의 속임수를 동원해 포로로 잡고
그로 하여금 사단의 역사를
참 신앙으로 착각하도록 자꾸 미혹하고 유도해
성령의 거룩한 역사인 것 처럼 그를
오인하도록 적극 유인하게 되지요.
그는 그에게 다가온 거룩한 천국의 역사로 둔갑한
사단의 속임수의 가르침이 주변을 통해
그에게 알려져 가까이 전달이 될 때
성령의 역사로 잘못 알고 따라가게 되지요.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을 통해 그는 신앙적 행위로서
신앙인들의 걷는 참신앙의 바른 길이라 생각해
어리석은 행동으로서 사단의 길을 하나님의 뜻으로
잘못 알고 따라가게 되지요.
여기서 그는 알게 되지요
그가 그동안 오랜 세월에 걸쳐서
간과해 온 채 자신이 행동해 온 그릇된 행위로서
자신에게 늘 저주 만이 가득했기에 수십년이 지난
나중에 가서 알게 되지요.
자신의 신앙적 행보가 아주 어리석은
신앙적 판단 오류를 낳았다는 점과 처절해진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의 눈이 열려질 때
사건의 진실을 자세히 파악해 알게 되지요.
반드시 신앙의 행위에는 피할 수 없는
그 자신의 신앙적 자발적인 행위에 따른
책임이 반드시 그에게 뒤따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는 십년간 사단의 가르침의 속고 속아도
그는 몰랐지요.
악령의 속임수에 속아도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잘 모르게 되지요.
그래서 아주 오랜 수십년이 흘러 간
나중에 가서야 깊은 저주가 터지고 재난이 터져
슬픔 만이 남겨져 있을 때 알게 되지요.
하나님의 축복된 현실이 그에게 펼쳐진 것이 아니라
사단의 저주 만이 그의 현실에 있었으며
그동안 많은 나쁜 일들의 발생 원인이
결국은 자신이 선택해 걸어간 신앙적 애위로서
사단에 속아 넘어간 자신의 어리석은
신앙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생겨난 사실을 알게 되지요.
어리석은 신앙 생활은 스스로의 책임이지요.
자신이 판단을 정확히 못해서
자신의 파멸된 생활을 이끌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그가 슬퍼하며 깨닫게 되지요.
한국 교회 안에 이처럼 잘못 알려져
그릇 확산된 신앙적인 가르침 중에서
성령의 역사로 몰래 둔갑한
사람의 훈계가 있었지요.
사단의 역사에 기초한 사실을
사람들이 인생 훗날에 가서야
흐릿하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한 그가 저주 만이 가득한
자신의 비참해진 현실을 뒤 늦게 깨닫게 된 후에야
알게 됩니다.
그런 신앙의 길을 걸어간 길이
스스로 선택한 어리석은 자발적
자신의 신앙적인 행위 였음을 깨닫고
과거를 돌이켜 후회하면서
그 책임을 느끼게 되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는 그런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에 따라
스스로 악마의 가르침을 따른 사실에 관해
스스로를 위안하며 핑계를 대지요
하나님께서 거짓 종들이
시대의 한 때 무림을 평정했기에
그들 만을 세웠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그를 따라갔지요
내 책임은 아닙니다.
그는 자꾸 괴로운 신앙적 현실을
억지로 자꾸 회피하려 들지요
시대의 흐름으로 인한 결과라면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려 하지 않게 되지요.
스스로 사단의 악의 영들의 가르침을 따라
사단의 속임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성령을 따르지 않고
사단의 악령을 따라 다녔기에
현실적인 신앙적 책임을 피할 수 없으며
당연히 하나님의 저주가 그의 현실로
터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형벌 가운데 던져져
괴로움과 슬픔 만이 있는 괴로운 현실에서
늘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한 동안 괴롭혔던 소인배>
소인들이 이 세상에
많았지요.
이런 악인들은 너무 소인배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악하게 살다가 소인배로 전락했지요.
그런 소인배들은 악인이라는 점입니다.
너무 인생을 악하게 살다가
사람들의 조그만 잘못을 무슨 큰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크게 확대시켜서
자신의 일방적 소인배 기준에 따라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고
큰 잘못을 저지른 것 처럼 남을 문책하려 들지요.
소인배가 그와 같지요.
이런 소인배는 천국에서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천국을 맞서고 대적하는 아이들>
늘 악마 같이 굴지요.
악마는 끼리 끼리 모이는
같은 통속들이라 같은 동종인 악마들에게는
항상 관용하면서 유리하게 행동을 했지만
주의 나라를 향해서는
적들로 간주해 저주스런 독설인
화살로 겨냥하고 항상 대적하고
맞서는 입장에 서게 되지요.
우리는 이런 악인들이 저주를 받게 된다고
말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당당히 맞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항상 주께 맞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맞선
그들의 현실적 삶 위에
하나님의 심판속에서
저주가 터지고 죽게 됩니다.
그들의 영혼은 죽게 되지만
육체는 죽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악인들인 그들 에게도
허락된 삶의 기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Microsoft
OneNote 2016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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