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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SPIRIT IS RAISED TO THE TEMPLE OF HEAVEN > My spirit was lifted up so high and very quickly in that I reached the temple of God in heaven I saw Jesus Christ standing in the center of the temple in heaven. I was directed by the Lord in the temple of heaven to continue the work of God I am in the process of delivering The Word Of Heaven today. 2020년 현재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상에서 온라인 설교 사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덕수 목사입니다. 사역자의 영이 천국으로 올려져 천국 성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후 주님의 명령에 따라 온라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통 신앙과 한국 기존 교회들과의 신앙적 기준에서 개념 차이가 나고 있는 부분들에 관해 한글 개역 개정판 성경과 NIV, NEW KING JAMES VERSION BIBLE을 상호 비교해 가며 설교 사역을 진행 중입니다. I will tell the kingdom of heaven about the will of God who is speaking to him personally about the life of modern believers living today.

2019년 6월 11일 화요일

천국을 여는 성도들의 새로운 신앙의 길 (1회)


2019 6 11일 화요일
오후 4:00

TODAY'S GOD MESSAGE
20196 11 화요일
오후 4: 05


        <  오늘의 핵심 신앙 가이드 >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의 성도로서
진정한 신앙의 길을 걷기를 원하고
삶의 안정성을 깊이 유지하기를 원하는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천국을 보고를 여는 새로운 신앙의 길은
나의 생존 게임을 남들보다
보다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우리가 고쳐가야 삶의 기준을
신앙관과 직접  연계시켜 바꾸어 가야
신앙적 법칙과 룰로서

천국 신앙의 길을 여는
새로운 신앙관과 생활 방식이 되어진 다는
점들을 일일이 열거해 그에 합당한
새로운 신앙의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가르쳐 지는
이런 새로운 신앙 방식을
필히 수행해 실천하고 준행해 가야 합니다.




< 새로운 신앙 생활 방식이란 ?>
우리는 천국의 계시를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을 따라
천국 사역을 가르쳐 이끌고
수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친히 지시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천국 설교 메시지를
정확하게 현실적인 개념으로
현실과 신앙과 접목시켜 직접 전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매일 데일리 일과로 반복되는
자신의 변함이 없이 지속되는 신앙의 길에서
과거와 같은 많은 현실적인 삶의 폐해를 낳는
낡은 신앙 패턴을 끊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살았던 어두운 현실을 주로 낳았던
기존의 낡은 신앙 방식의 길을 벗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그가 매일 단지 기도만 하고
예배만 드리고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끝내는
그런 금욕적 신앙 패턴에서 탈피해 가야 합니다.

그가 열심이 새워 꼬빡 기도를 하지만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창업이나
아무런 생업을 위해 일하려 하지 않고,

하늘에서 날벼락 처럼 다발이 어느
그에게 쏟아져 내려 듯한 착각에 빠져
살게 되지만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고 허구한 날을 기다리면서 속게 되지요.


나를 위해 새로운 일을 거의 실행하지 않게
그런 어리석은 신앙의 결과로 다가오는
인생의 처절한과 안타까움 만이 연속되는
비참한 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기존의 금욕주의적 신앙관이 가져다
현실과 괴리감을 크게 낳는
낡은 신앙관이 낳게 되는
비극적 삶의 결과를 가르치게 됩니다.

하나님 만을 철저히 굳게 믿었던
그들의 삶의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조목별로 알려 갑니다.

낡은 폐쇄적인 신앙 방식에 불과한
생의 안일함에 근간한 어리석은 길은
천국의 복을 낳지 못합니다.


그가 영적인 안목의 눈이 가리워지고
귀가 닫혀져 자신의 신앙적 어리석음을
모르고

그런 그릇된 신앙적 기준이 낳게 되는
삶의 폐해 상황을
그가 모르고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어두운 삶의 거듭 반복되는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결과 만이 그의 영적 무지속에
신앙적 피해로 다가오게 됩니다.

아주 처절하게 현실적 위기감으로
저주 만이 그득한 어둔 현실속에서
그가 살게 된다는 점을 깨우쳐 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모르고 걷는 기존 신앙의 길은 때로는
영적 파멸의 길이라는 마귀의 시뻘건 불길을
여러분들이 삶의 현장 속에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크게 빗나간 신앙의 길을
신앙의 길처럼 오판해서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나 어리석은 신앙의 길을 기다리고
철저히 믿는 길에 서게 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망상으로 인한 결과로서 신앙적인 열매는
애초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기에
결과는 전혀 없게 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지옥의 파멸에 가까워 지려고 하는
그런 너무나 무지한 사람들도 많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영적 무지라는 파멸에 빠지는
신앙의 길도 있습니다,

길은 죽음의 그늘 만이
베일 뒤에 숨겨져 드리워진
어두운 신앙의 길을 낳게 됩니다.

길은 중세 수도사들이 걸었던  길을
크게 오판한 길이며

새로운 시대는
기존의 그런 낡은 신앙적 기준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신앙의 탄생을 말하는
신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게 됩니다.



< 결론 >
중세의 수도사들이 걸어갔었던 신앙의 길로서
기도와 예배만 드리고 아무 일도 행하지 않는 
그런 금욕적 신앙 생활 패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오늘 말씀은
 설교 말씀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져 갑니다.

( 테마 설교 연속 씨리즈)
* 주제 낡은 기존 신앙관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신앙의 < 1~3회분 >




< 낡은 기존 신앙관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신앙의 >
   ( 1회분 )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다윗   온라인 교회
            목사



     <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깨닫는 새로운 신앙 >
우리는 수십년에 걸쳐서 여러분들이 신앙이
가져온 신앙적 폐해를 구체적으로 열거해
알려가게 됩니다.

기존 신앙관의 폐해로서
자신도 모르고 피해로 겪게 되는
기존 신앙의 길도 있게 됩니다,

길은 신앙인들의 꿈의 성취와는
너무 동떨어진 빗나간 신앙의 길로
그를 비극적 현실로 몰아넣게 됩니다.

기존 교회가 걸어 그릇된 신앙의 길로
열매 없는 신앙의 결과가 없는 길에서
방황하는 사람들도 많게 됩니다.


< 영적 안목의 눈이 가리워진 신앙의 길에서 >
기존 신앙의 그릇된 빗나간 신앙의 길이
당장에 빠른 시일 안에서 그에게 집단적으로
파멸적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기존 신앙의 길이
무엇이 크게 잘못된 길이 되는가를
그들이 전혀 모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의 모르는
기존 신앙의 길을 걷게
다가 파국적 결과를 미리 알려가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다수의 집단이
길을 걷기에 따라가고 있지만

그릇된 신앙의 길은 미래적 순간으로 다가갈 수록
오로지 불신 감정 만을 낳고
성도들에게 현실적으로  어떤 생활적인 비참함의 결과를
크게 낳게 되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알려
정확하게 깨우쳐 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서 확인되고 파악된
기존의 허구적인 신앙관의 실체에 관해 파헤쳐
기존 교회들의 신앙관이 낳는 길이

천국의 정통 신앙에서 크게 빗나간 길이 되는
겉치레 불과한 허구적 실상의 헛된 결과를 낳는
현실을 모르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깨우쳐 가게 됩니다.


기존 신앙관이 대규모 영적 집단에서
이미 수십년 이상
낡은 기존 신앙관으로 고착이
마치 천국의 정도의 길인
주류적 신앙의 길을 낳는 것처럼 간주되고 있지만

길에서 오히려 성도들은 삶의 정체만을 거듭한
사단의 속임수에 빠져 함정이
결국은 농락이 가져다 결과로 신앙인들에게
너무 많은 피해를 크게 깨어진 현실과
성도가 고통을 크게 겪어 왔음을 깨우쳐 가게 됩니다.

기존 교회의 신앙관이
처참하게 겪을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부재하심과 낳게 되는
심각한 피해 상황을 알려가게 됩니다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의
중세적 금욕주의 신앙관을 따라가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가
아직도 그런 신앙관을 철저히 사수하고 있는
금욕주의적 신앙의 길에서 서서 있게 ,

과감한 결단을 내려 낡은 신앙적 폐해의 길에서
신속히 벗어나야 것을 촉구하게 됩니다.

아직 많은 신자들 가운데
그런  중세 금욕주의 신앙관을 옳게 여겨
사수되어 졌음에도

그들의 신앙적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이루지 못하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존재성이 오히려 사라져
천국이 부재하고 있는 것처럼 간주되는
신앙적 불신 감정이 이어져 가는
기존 교회들의 부패한 신앙적 현실을 지적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너무나 심각한 폐해 만으로
다가온 여러 피해 상황들이
많은 교회를 향한 천국을 향한 불신의 감정들과
폐단을 낳고 있는 것을 드러내게 됩니다.


< 기존 교회가 겪는 불신앙의 현실 >
우리는 교회 안에 들어 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불신을 초래하고 있는 원인으로
금욕주의적 카톨릭 교회가 걷는
중세 금욕적 신앙이 초래하는 결과가 초래하는
파국적 결과를 만들어 심각한 신앙적 피해의 결과를  
먼저 교훈으로 가르쳐 갑니다.




* 우리의 오늘의 신앙적
새로운 주장에 관해 신앙적
다른 입장에서 기초한 편견과
오해가 없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물론 우리는 오늘 테마로 삼고 포스팅하고 있는 주제로
중세 수도사들의 고귀한 거룩한 신앙의 길을
폄하하는 입장에 서거나 그런 신앙의 길에선 사람들을
절대로 낮춰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하게 됩니다.

우리는 카톨릭과 정교회의
여러 수도사님들을 존경하는 입장에서
신중하게 글을 쓰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천국의 성도를 이끌어 인도해 가시는
  새로운 신앙의 >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신앙의 길을 따라
새로운 인생의 길로 들어갈 있어야 합니다.



< 과거의 유럽의 중세 수도사들이 지켜 금욕적 신앙관이
대륙을 건너 철저한 금욕적 신앙관의 전통을 이어가며
오늘의 한국적 신앙의 현실로 내려오고 이어져
신앙인들의 다수가 길을 참된 신앙의 길로
따르는 길을 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


< 물론 기존 교회의 다수 성도가 아닌
일부에 속한 신앙일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먼저 기도하기 전에
자신의 본성과 생각의 중심을
정확히 알고가야 합니다.

신앙관에 기초한 일과의 실행 과정이
어떤 하루의 삶의 결과를 낳는 것을 모른
내게 다가 미래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무조건 걸어 가는 신앙의 길도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처럼 신앙인들이 하루의 일과를 보낼
오로지 자신의 하루의 일과를

온전히 창조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받고
참다운 신앙의 길을 걷고
주님께 모두 시간을 드린다고 생각해서

오로지 너무 무리해서 낮이나 밤이나
금식 기도로 기도만 하고,

오직 열심히 내가 일해야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만 드리고
그리고 우리의 생존을 포기한 채로
아무 일도 행하려 하지 않는

그런 신앙 만을 중시하며
자신의 꿈과 육을 버리고
금욕적 인생의 만을 위하며

자신을 송두리째 모두 포기하는 금욕적 신앙의
길에서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인생을 이끌어 왔던
기존 금욕적 신앙에서 파생된

중세의 수도사들이 걸었던
낡은 신앙적 고립된 폐쇄 주의적인
신앙적 성향의 길에서 교회의 고립을 깨닫고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게 됩니다.



< 신앙은 당연히 생존과 병행해서
함께 같이 걷는 길이 됩니다>

우리는 과거 현실 은둔의
금욕주의 신앙의 틀을 벗고 가야 합니다.

이제 엄연한 현실과 신앙을 별개로 취급하는
그런 현실을 무시하는
그런 내세 주의적 신앙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현실적 흐름세에 걸맞는
시대적 현실의 흐름에 부합된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삶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드시 각오 속에서
새로운 신앙의 길을 믿음의 길로 세상속에 들어갈 것을
인정하고 실행하는 길이 동반되어져야 합니다.

신앙적 각오와 새로운 결단과 의지가 있어야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걸을 있게 뿐입니다.

내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려 하지 말고
전혀 과거적 고립적 신앙 생활 방식에 따라
폐쇄적 신앙적 성향을 강하게
기존 신앙에 입각한 생활적 기준을 바꾸어 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게 됩니다.

세상이 더러워 내가 버린다는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을 배타시하는 그런
금욕적 삶의 패턴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기존 신앙의 낡은 생활 방식의 의지를 바꾸지 않고

기존 신앙의 길을 따라 걷는 안일한 신앙의 만을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가장 가까운 길로 간주하고
옳게 여겨 변함없이 기존 신앙관의 길을 걸어갈 경우

우리는 앞으로도 세상의 중앙에
들어갈 없게 되며 결과로 삶의 도약이나
인생의 전환기적 발전을 위한 전진과 번영을 위한
삶의 변화가 거의 다가올 없는

정체된 과거와 다를 없는
매사가 침체되고 발전이 중단된 상황에서
같은 일만 반복이 거듭되는
심각한 고생의 만이 여전히
지속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는 점입니다.


시대의 경쟁력에 뒤떨어 지는
삶의 낙후된 경쟁력을 상실한 상황 만이
성도가 걷는

낡은 신앙의 금욕적 신앙의 폐해가 있습니다.

결과가 신앙이 현실을 거부할 경우
결국은 모두 피해로 다가와
현실 지분을 상실하는 결과로 연결되고
나에게는 남들이 한껏 누리는

모든  삶의 기쁨의 순간들과
낙을 모두 상실하는 비참한 인생 살이 결과로
나의 어둔 주변을 더욱 어둡게 만들게 된다는 점입니다.


< 만약 세상을 더럽고 죄악으로 가득 곳으로 여겨
세상 안으로 교회와 성도가 들어가지 못할 >

우리가 한번의 짧은 일생을 살게
시대에 뒤떨어져 낙후되고 뒤쳐지는 길을
스스로 일부러 선택해서
걷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를 하급 인생으로 던져 고통으로 나를
밀어 넣는 괴로운 인생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 현실로 진입해 들어가지 않는
 실행이 없는 금욕주의 신앙관의 길의 폐해 >

내가 금욕주의 신앙의 만을 옳게 여길
나의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내가 선택해
신앙적 선택의 결과로 현실이 어두워

비극적인 미래를 낳게 되는
꿈이 사라진 비극적인 미래로 다가와

순식간에 나에게 비참한 현실로
아무런 생의 변함이 없이
슬픈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 알고가야 합니다.



* 금욕주의 신앙관에서 과감한 탈피
< 내가 신앙적 과감한 결단과 결연한 의지가 없어
낡은 신앙의 길에서 머물고 계속 벗어나지 못할 경우>

우리가 대체로 새로운 현실을 고려한 길을
신앙적 선택적 사항으로 선택을 하기를 거부하고
과감한 신앙적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워

나에게 다가 현실에서
내게 부딪치는 급격한 삶의 변화와
주변의 상황들이 변화로서
내가 세상에 들어가는 것을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성향이 짙은 그런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로지 신앙의 목적으로
내세만 생각하는 현실 도피적
성향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과거처럼
중세의 금욕 주의적인 신앙 생활 방식에
계속해서 한사코 머물려고 하고




< 신앙 집단의 교리 실천으로 인한
심각한 현실적 지분 손실과 피해 상황>

의지와 무관하게 또한
그가 속한 신앙 집단이 요구하는
족쇄 신앙에 그가 계속 묶일 경우
그에게 결과적으로 어떤 현실적 결과가 올지를
그는 알고가야 합니다.

만약 그의 생각이
" 내가 현실 중심에 들어가는 길을
용인할 없는 길이야!"

자신의 삶의 영역의 울타리 안에서
수용할 없다고 생각하는
그의 좁은 마음에 가져다 주는
포용성의 한계치로 인해

자신 만의 과거의 신앙의 만이
가장 옳게 여겨질 수도 있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과거의 신앙적 기준에
여전히 머무는 것을 원하고
쉽고 편한 길이라 여겨 기존 신앙관을 사수하려 드는
쉬운 만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 낡은 기존 신앙의 길이
많은 신앙적 가치관의 폐해를 낳게 되며

인생의 향방을 강제로 속박하는 
족쇄를 걸게 된다는 것을 반복해서 가르쳐도
사람들은 듣기를 거부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낡은 과거 신앙의 길에서 발생된
신앙적 폐해를 없이도
그들이 겪고 겪었음에도

여전히 기존 신앙관을 옳게 여겨
생각하기를

"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길은
교회 공간 안에만 머물기를 원하실 꺼야!"

그가 이처럼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가기를 꺼려 하는
금욕적 신앙의 길이 천국이
가장 기뻐하시는 신앙의 길이라 여길 경우

여러분들의 과거의 기존 신앙의 만을
사수 하려고

그가 자신의 신앙의 길에서

오늘도 신앙적 열매와 결과가 없는
아무런 삶의 꿈의 성취를 향한 도약이나

거의 주변의 발전을 성취할 만한
인생의 변화가 없는
거의 부정적인 삶의 폐해 만이
거듭 다가오게 된다는 점입니다.



나름대로의 순수한 신앙의 길에서 발버둥 사람들 >
아래의 글에서 드러난 금욕주의적 신앙적 기준에서
기존 신앙관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세상을 배타시하고 오직
내세 만을 고려해서 살아야 한다는
교회들의 가르침의 기준이

그런 그릇된 금욕적 신앙관의 교훈과 척도가
지나치게 일부 순수한 신앙을 지켜 가려는
성도들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신자들에게 현실적 지분을 포기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신자들의 내세 신앙의 기준이 정도라고 믿고
일부는 사실을 철저히 믿고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하나님의 뜻으로 오인해서 따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세상속에서 들어가서 생존 권한을
박탈당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그런 어리석은 현실 포기를 낳게 되는
족쇄 신앙이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닫고 새롭게 알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의
삶의 고통의 근원을 파악할 있는 길을
깨우쳐 발전과 도약의 길을 여는
신앙의 방식을 소개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겪어야만 했던 과거
고생 길이 어디서 부터 원인이
발원되어져 왔는 지를

진단하고 새로운 길을 여는
하나님의 뜻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인생의 신앙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기존 신앙관의 폐해를 답습하고 따르는
어리석은 신앙의 길에서 과감히 탈피해 가야 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존 신앙관의 가리워진 많은
폐해의 진상을 모르고 계속 길을 따르다가

아예 이제는 어느 자신이
결코  원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현실이
멸망에 가까워진 자신의 비극적 현실을 보게 되고,

천국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그런 불신앙의 뜨거운 영적인 심판의 불길 속에
빠져 들게 됩니다.

엄연히 오늘의 살벌한 현실 속에서도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모르고
자신을 위한 신앙의 길을 선택할
잘못된 길로 들어갈 있다는 점입니다.

그가 기존 교회에 속해져 금욕주의적 교리를 배워
자신을 옳은 신앙의 길이라 여겼지만
그릇된 신앙의 인줄 모르고 걸어간 길이 
스스로의 생각을 따라 걷는
스스로를 위하는 선택의 길목에서

지옥과 방불한 세상으로부터
고통이 뒤따르는 길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불의 심판과 형벌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걷는
잘못 판단한 결과를 의미하기도 하고

길이 결국 천국의 뜻에서 빗나간
그릇된 길이 였기에

그가 스스로 빗나간 신앙의 길을
잘못 길을 걸어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 신앙의 길은 집단의 기준을 따라
교회의 집단이 강단에 아무나 세웠다고 해서
천국이 연결이 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가 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 기존 낡은 신앙관 폐해에 빠져 오랜 세월을 걸쳐 헛된
신앙관을 믿고 사수해 사람들은 신앙적 감격 속에서
오히려 실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열심이 있는 신앙의 길이
무용지물 처럼 여겨지는 불신앙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그가 기존 신앙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걸을
하나님의 살아서 활동하시는
실제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결국은 길에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심을 거듭하다가
하나님을 크게 의심하거나
천국 신앙에 대한
영적 신앙적 필요성을 크게 상실한 채로

자신의 신앙이 오히려 죽음이라는
비참한 현실 만을 낳게 되었다는 생각 속에서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안정성을 잃고
크게 이리 저리로 흔들려 가는 상황에서 
그의 신앙이 현실과 괴리된 만을 깨닫고
깊은 회의감과 기도의 응답이 사라진 현실속에서

그렇게 그는 아무것도 자신의 대로
거의 성취되지 않는 상황속에서
신앙의 무용지물과 깊은 불신과 실의에 빠져
낙심에 빠져들게 됩니다.


오늘까지 기존 교회에 속해져
신앙의 거대 집단의 요구에 충성하다가
낙심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효용성을 상실한 교회를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들은 기존 신앙의 길에 충성한 만이
정통 신앙적 교리라고 여겨 열심히 따르고
정도를 걷는 길이라 여기게 되지만 결과는

오히려 비참한 신앙적 실질적 필요성을
상실하는 불신앙을 낳게 가능성이
점차로 커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 신앙적 오판의 결과가 가져다 폐해>
그가 기존 교회의 대형화 기존 유명세의
브랜드 만을 믿고 우르르 몰려 드는
사람들의 행보를 따라 같이 움직여 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집단적인 행보를 선호하고
다수의 집단 행보를 따라 걷는
신앙의 만이 참된 길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바른 길이라 여겼기에
오늘까지 기존 교회의 신앙관의 길을
여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굳게 믿고
사수하고 지켜가려 하지만


우리는 천국의 하나님의 직접 선택하신
천국의 종으로 부르심의 섭리를 따라

하나님의 뜻을 다시 수정해
낡은 기존 신앙관의 어리석음과

영적인 삶과 연관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삶의 폐해가 컸음을 널리 알려
여러분들에게 신앙적 오류에서 벗어날 것을
전달해 가게 됩니다.



우리는 낡은 신앙관이 낳게 되는
비참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나 비극적 현실로 다가
천국에서 버려진 결과로

여러분들이 겪었던 많은 신앙의
슬픈 뒤안길에서 괴로운 현실 만이
그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동시에 동반된 많은 심적 고통들이 누적된 채로
쓰라린 버려진 인생으로서 온갖 체험들과
고생의 만을 가져다 결과 만을 낳았다는
사실을 깨우쳐 가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신앙인들이 겪을 밖에 없었던
많은 신앙적 폐해를 열거하고 입증해서 
그런 인생의 비극적인  고난의 길이
어떤 원인으로 다가온 삶의 결과였는 지를
말하게 됩니다.

신자들이 부패한 기준을 말하는
기존 낡은 신앙관에 머물게

하나님의 뜻을 그가 거의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그가 저버렸음에
인생들에게 쏟아진

하나님의 징벌적인 결과라는 것을
깨우쳐 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속으로
심중에서 깊이 생각한 것처럼
여러분들이 깊게 인지한 사람을 위하고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존 신앙관의 길이

하나님의 뜻이 전혀 포함된
바른 천국 신앙의 길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게 됩니다.



Microsoft OneNote 2016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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