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GOD MESSAGE
MERRY CHRISTMAS
( 2018-12-22 토요일
)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 SOUTH KOREA , SEOUL
다윗 성 온라인 교회
PASTOR. DUK SOO YOO
유덕수
목사
< 베테랑 신앙인들의 영적 갈등과
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메시지 >
< 요동치고 흔들리는 신앙 >
우리는 기존 교회들의 많은 신앙적 낭패와
병폐 상황들이 매우 컸음을 지적하게 됩니다.
많은 현대 신앙인들 중에서
자신이 직면한 오늘의 어려운 현실을 보며
크게 낙심하는 신앙인들이
여전히 많았음을 지적하게 됩니다.
비록 그들 중 일부의 사람들은
한 때
과거에 신앙의 큰 열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신앙적 노력과 결실이 없었지요.
그의 가혹한 현실의 생존 논리를
신앙과 연결시켜 반영하지 못한 채
정체된 신앙은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고 적용하지 못한
큰 영적인 괴리된 상황 만을 낳았고
결국은 아무런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했지요.
그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요원한 것처럼 보이는
도달할 수 없는 꿈과 이상적 현실과 비교해 보지요.
너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자신의 낮은 위상의
현실을 보고 실망하게 됩니다.
항상 그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적이 없었던
자신의 뒤쳐진 삶의 과거를 때 늦게 다시 회고하며
오늘에 와서 그동안 행했던 자신의 신앙의 노력들과
많은 희생들이 있었음에도 세파의 파고에 밀려
물거품 처럼 사라진 듯한 꿈이 사라진 듯한 어둔 현실을
접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잘잘못을 냉철하게 뒤돌아 보며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 중 일부에 속한 사람들은
벅찬 신앙적 첫 사랑의 감격적인 열심이 있었던
한 때의 신앙을 가진 신자들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제 그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 다 깨져 버린 냉혹한 현실에서
그의 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감조차
와르르 무너진 현실에서
그는 자신의 오랜 신앙인으로서 차곡차곡 쌓여진
신앙적 경험들이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신앙의 누적치 안에서 아무런 어떤 실질적인
월등한 실질 소득의 향상도 거룩한 신앙적 현실적 열매도
맺지 못한 상황에서 크게 실망하고 낙심하지요.
너무 큰 기대감 만이 지나치게 앞섰던 상황에서
실망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전진이 없는
그의 현실로 다가온 향상을 꿈꿀 수 없는 답보 상태에서
흔들리며 영적 방황을 하지만
직접 자신이 선택한 신앙의 길이라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한 숨 지으며 긴 슬픔의 밤들을 돌아보며
밤잠을 설치며 지새우게 될 뿐이지요.
이미 자신의 한창의 때를 지나
이제 쇠한 열정이 다 소진이 되고
쓴 추억 만이 인생의 후회만을 남기는
낡은 일기장에 낙서처럼 남겨진 채
오늘도 남과의 생존 경쟁에서 크게 뒤쳐진 듯한
자신의 낮아진 현실을 마주치며
인생을 점검하는 회고적 상황속에서
미래를 향한 새 행보로서 걸어 갈
새 출발을 이룰 수 있는 성공 가능성의 길을 열기 위한
경쟁 가능한 새 돌파구를 발견하고 찾기를 원하지만
평소에 자신이 철저히 그토록 믿었던 거룩한 신앙의 길도
내가 어려운 현실을 거듭함에 따라 의기소침해 지는 상황속에서
과연 오랫동안 희생의 길을 걸으며 반추하기를
" 내가 이렇게 노심초사 걸어 간 신앙의 길이
왜 내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 만을 낳게 되었는 가?"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지나온 과거적 상황을
점검해 감에 따라 어렵게 내려진
새로운 결단적 의지를 구체화 시켜 가기 위한
아직도 험난한 신앙의 길을 인내하며 걷기 위한
초심으로 돌아 간 신앙적 자세를 견지하려 하지요.
열매가 보이지 않은
어두운 현실이 풀려지지 않음으로 인해
신앙의 지속적인 마음의 각오들과 결단과
그에 상응하는 신앙적 실천 행위들 까지도
이제 크게 후회하는 상황에 빠져 크게 흔들리는
심적인 요동 상태가 그에게 다가오게 되지요.
Internal conflict ( 내적 갈등 )
(천사의 말) 천국은 기적을 창출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높은 약속을 이루는 기적을 낳게 됩니다
VS
(사단의 말) 네 현실은 암흑 세계에 불과할 뿐이야 !
< 영적 무지의 소산 >
그렇게 그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가 아주 어렵게 내린
힘든 결단 속에 그의 신앙의 결정체들이
너무 많은 영적 모순과 어리석음을 낳은
사실을 잘 모르고 살았다는 점을 깨닫고 뒤늦게
그의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도 오게 됩니다.
그의 신앙인으로서 걸어 간 긴
오랜 세월에 걸친
낡은 방식의 생활적 결과 때문일까 반문하지요.
보다 더 큰 현실감을 반영하지 못한 상태로
현실적 괴리감 만이 그의 신앙의 갈 바를
재촉하고 훈계할 때
자신이 교회의 그릇된 가르침을 정통적 교훈으로 알고
중세의 수도사들과 같은 영적 금욕주의적 신앙관의 길 만을
포기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들을 그 실행이 현실로 병행되지
못했던 구체적인 원인으로 발견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자신 만이 최고의 신앙적 경지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지만 자신의 길에서 그가 너무 어리석은
결실이 없는 신앙인으로서 오늘도 여전히 낭패 만을 일삼는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해 실천해 온 길이 오직
어리석은 정체된 결과 만을 낳았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아무리 애써 용기를 내고 목표를 향한 고지 점령을 향한
출발을 과감한 용단속에서 재차 시도하려고 해도
난제처럼 거의 풀리지 않는
암호체계의 일회성 비번으로 잠가 놓은
기득권 텃세의 현실의 높은 진입 장벽에 가로 막혀
현실에 분노하면서 반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하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이 그의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없는
상황 만을 보게 되지요.
< 고양이의 높은 꿈 >
I saw myself as a lion.
고양이 본 자신의 모습은 호랑이 였다 !
그러나 거울 밖에 드러난 자신의 엄연한 현실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실은 자신이 고양이라는 사실이다 !
자신의 원대한 삶의 높은 초고 레벨 목표를 향한
과감한 진전과 신앙적 실행을 이루어 가기 위해
오늘도 많은 눈물속의 희생과 각고의 노력 끝에
보다 많은 시도들이 거듭 실행되고 있지만,
자신의 신앙과 연결된 활성화된 현실의
연결 고리가 전혀 없다는 점이
안타까운 현실을 낳게 되지만
누구에게 자신의 입장을 하소연해도 해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만이 계속 이어질 뿐인 상황이
그를 괴롭히지요.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 장막의
미로 상황에서 빠져 나갈 출구를 찾지 못하고
냉기로 가득 찬 자신의 방황하는 현실속에서
살게 되지요.
그는 가정하고 생각하지요.
만약 내가 세속적 삶과 내 자신의 꿈이
신앙안에서 기적을 창출해 성공가능성의 현실과
직접 연결되고 늘 병행이 된다고 할지라도
과연 내가 그런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까? 라는 생각이 들지요,
오늘에 이르기 까지
모두 다 자신이 선택해서 걸어 온 길이지만
그가 걸어 온 오랜 세월에 걸친 거친 삶의 행보가
자신의 책임으로 모두 귀결이 되는
따가운 조롱들이 들려지는 상황에서
온갖 자신의 과거적 책임을 회피하려 들지만
모든 신앙의 길 위에서 현실적 전진과 성취가 없는
상황에서 그 나마 재추진 의지 마저도 이제 자꾸 꺾여가는 듯한
상황에 낙심에 낙심 만을 거듭할 뿐이지요.
하나님의 섭리로서 특별한 은총을 허락하신
자신을 향하신 천국의 선택함을 힘입고도
늘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 온 그가
천국 백성들에게 천국의 특권처럼 여겨지는
신앙이 기적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전개되는
믿음의 발전 상황이 믿음의 단계적 전진들로
현실로 이어져 도약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심성에 마치 약속이 된 듯한
꿈의 현실화가 이루어 지기 만을 오늘도 꿈꾸며
기대감을 버리지 못해
오늘도 또 다시 찾는 장소로 이끌려져
기도하면서 걷지만
미래의 확실한 보장이 늘 거의 보이지 않은 상황과 맞물려
현실적 안정성까지 마구 흔들리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 어두운 현실을 볼 때 마다
자꾸 현실 결단의 독촉장을 재발급하게 될 뿐이지요.
게다가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까지
자꾸 괴롭힘 속에 나타나곤 합니다.
< 믿음의 확신이 흔들리는 이유는? >
그러면 이제
신앙인들이 신앙적인 굳건한 믿음의 확신이 없는
이유들 중 한가지를 지적합니다.
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여러 하나님의 사역자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해 세운 소수의 종들도 있지만
다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천국은 소수의 천국의 종들 만을 세웠지만 사람들은
천국의 결정을 알 권한과 권리가 없기에
그런 사실을 모르고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오히려 역행을 일삼는 천국의 원수들까지도
위대한 훌륭한 천국의 종으로 환대를 받는 상황이
지구촌의 현실로 유지되는 모순 투성이의
지구촌의 현실을 원망해도
천국의 명령을 한사코 거부하는 이 세상과
항상 이해 관계로 대립이 되고 삶의 행보가 결코 일치 될 수
없는
길 만을 세상이 걸으려 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천국과 대립이 되는 한 마음을 갖고
언제나 일치를 보이게 된다는 점입니다.
천국을 가르치는 성서가 있고
오늘도 천국의 종들이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지만
천국의 종을 자처하는 대다수의 사역자들이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조그만 이익과 현실을 위해
그들의 사역을 행할 뿐이지요.
대다수의 사역자들이 일구어 놓은
천국 사역을 빙자한 사역의 길이
과연 어느 누구를 위한 사역의 길인가요?
아직도 많은 지구촌의 사역자들은
사람의 이익을 고려한 판단과 현실성을 고려한
생존을 위한 인본주의적 결정에 따른 신앙의 길을 따라
사역을 행하게 되지요.
천국의 종들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지만
하나님이 선택하신 적이 없는 사역자들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세상을 살펴 세상과 공유된 상호간 공동적 이익을
도모하는 사역의 길을 전심을 쏟아 실행하게 됩니다.
다수의 사역자들은 오직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고려해
사역자의 길을 걷겠다고 천명하고
그의 사역자 인생의 새출발을
선언하고 결단한 사람들이 많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성직의 길에 들어 선
다수에 속한 사람들의 특성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
신앙의 구성을 이루는 근본적 요소 >
자신의 학식과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나온
세상적인 풍부한 개인적 경험들을 현대인을 위한
신앙적 기초와 근본이라 선언하는 성직자들도 있으며
때로는 자신이 해박한 지식을 갖춘 사실을 자랑하며
사역자 된 후 그런 학문적 지식의 기초하에서 습득한
지식적 측면에서의 사실 만을
성서적 개념으로 전달하며 그런 신앙관을 뿌리내려
가르치는 성직자들도 많게 됩니다.
성서를 인류 사회에 축적된 지식의 총체를 통해
지식 기반으로 하나님과 천국을 해석하며
사람의 교훈들과 생각과 기준으로 신앙의 길을 걷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과 천국을 세상에 전하고 알려갈 때
자신을 위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배교에 길을 걷는 성직의 길도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그들이 자신을 위한 성직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사람의 가치관이라는 빗나간 신앙적 기준으로
하나님과 천국을 대적하는 길을 찬양하는 집단이
교회의 십자가 종탑을 하늘 꼭대기로 세운 곳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천국을 향해 기도로 그들 집단들의
일방적 욕구와 탐욕을 쏘아 대는
인본주의에 근간한 일방통행적 신앙이 왜곡된 논리로
하나님의 뜻을 사람을 위한 뜻으로 변질시켜
잘못 가르쳐 온 신앙의 변질된 집단들과
그런 부류에 안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가르쳐 진 신앙관을
잘못 배운 신자들은 교회를 오직 자신을 위해
존재 되어져야 할 생존 처소 또는
이기적 목적을 이루는 신앙의 처소로 오인하게 되지요.
<
사람들이 빗나간 신앙의 길에서 행복함을 추구 했으나 >
그의 일반적인 평범한 신앙관의 노선은
오랜 세월이 경과한 후에 그 신앙적 오류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의 신앙이 천국의 기준에서 크게 빗나간 것을
성령이 그에게 깨우침에도 돌아서지 않았던
그가
근본이 다른 자신이 걷는
빗나간 현실 만을 고려한 이기적인 신앙관의 길 만을
걸으려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와 외면속에서
그의 현실이 그에게 슬픔으로 드러내는
상황 만을 그가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언제나 그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상황만을 낳게 될 때
그의 신앙이 흔들리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뿐임을 그는 잘 깨닫게 됩니다.
< 이처럼 사람들이 아주 오랜 신앙 생활을 했지만
천국에서 버려지는
빗나간 신앙의
길도 있습니다>
* 빗나간
신앙의
길
자신이 거룩한 신앙을 가졌다 자만했던
많은 신앙인들이 천국에서 버려지는 이유는
그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듯을 배제한 채
그의 생각을 따라 그릇된 신앙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신앙의 근본 핵심의 길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신앙인이 겸비해 지고 복종의 단계에 이르는
길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두려움 속에
하나님을 경외해 가는 길을 신앙인들이 걸어야 하지만
그는 신앙인을 자처해 오면서 살았지만
하나님을 위한 신앙의 길을 고려한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통해서
자신의 현실적 어려움 만을 타개하려 하고
부르짖지만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존재성을
안중에 깊이 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자신 만을 위해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보살펴 아껴주고 위해 주어야 한다는
이기적인 그릇된 관점에서 그릇된 신앙을 추구하려 들었고
만나려 했다는 점을 그가 여전히 모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도구로 만 자꾸 이용하려 든다는
생각을 미처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신앙의 뒤안길에서
늘 그는 애초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집단 간 생존 게임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현실적 이익에 기초한 신앙의 노선과
그 곳에서 탄생한 그릇된 신앙은
인본주의적 중심의 신앙을 낳게 되고
그 가르침을 배우고 자란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적 관점을 실행할 때
하나님의 칭찬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은 물거품이 되고 땅에 버려지는 결과 만을 낳지요.
그가 하나님께 버려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입니다.
언제나 그런 신앙의 결국은 자신 만을 위했기에
하나님의 외면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막이 없는
신앙의 열매가 없는 상황을 낳게 된다는 점입니다.
항상 또 뽑기로 꽝을 뽑는
그릇된 마치 도박 행태와 비슷한 결실 없는
헛된 신앙관을 낳고 그런 그릇된 신앙관은
영원히 하나님을 거의 만날 수 없는 그런 상황 만을
낳게 되는 참된 신앙의 부재만을 현실로 드러내게
된다는 점입니다.
많은 현대 신앙인들의 신앙의 중심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하는
신앙심이 결핍되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언젠가 자신의 숨겨진
이기적인 탐욕적인 신앙의 본질에 늘 응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 만을 그가 열심히 찾고 찾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의 변질된 심성을 아시고
그를 버리시고 외면하시게 된다는 점입니다.
천국의 교회는
사람의 이익과 생존을 위한 처소로
사람의 목적들을 이루기 위해
활용이 되는 그런 곳이 영적으로 타락한 장소가 아닙니다.
천국은
인생의 여러 목적을 갖고 한 단위로 뭉쳐지고 합쳐져
사람들을 뜻을 추진하기 위해 모여진 집단들로
구성되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의 교회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되어진 인류가
하나님의 섭리속에 내려진
하나님의 결정과 그 뜻에 따라
천국 백성들의 삶이 이끌려 지고
인도되는 상황이 늘 유지되는 곳이 됩니다.
Microsoft
OneNote 2016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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