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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SPIRIT IS RAISED TO THE TEMPLE OF HEAVEN > My spirit was lifted up so high and very quickly in that I reached the temple of God in heaven I saw Jesus Christ standing in the center of the temple in heaven. I was directed by the Lord in the temple of heaven to continue the work of God I am in the process of delivering The Word Of Heaven today. 2020년 현재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상에서 온라인 설교 사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덕수 목사입니다. 사역자의 영이 천국으로 올려져 천국 성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후 주님의 명령에 따라 온라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통 신앙과 한국 기존 교회들과의 신앙적 기준에서 개념 차이가 나고 있는 부분들에 관해 한글 개역 개정판 성경과 NIV, NEW KING JAMES VERSION BIBLE을 상호 비교해 가며 설교 사역을 진행 중입니다. I will tell the kingdom of heaven about the will of God who is speaking to him personally about the life of modern believers living today.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세상은 잘 사는 데 왜 우리만 가난해야 합니까?


2019 4 8일 월요일
오후 8:34
TODAY'S GOD MESSAGE

 < 어느 신앙인의 힐문 >
질문(Q) : 세상은 잘사는
            우리만 항상 가난해야 합니까?

대답(A) :  그가 신앙을 배울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못 착각해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낡은 기존 신앙관이 나를 옥죄어
              나를 가난속에 묶여 살도록
              가르쳤고, 금욕 주의 신앙관의 폐단이
             가져온 결과로서 고쳐지지 않고 있는
             신앙적 폐단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신앙적 흐름의 분위기에 따라
              그가 아직도 휩쓸려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핵심 주장과 결론 )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1-2 세대 (1960-1980) 있었던

한국 기존 교회들의
금욕 주의적
기도원 금식 은사주의적 신앙관을
이제 벗어 버리고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현실 진입을 과감히 이루는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 2019-4-13    토요일 )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 SOUTH  KOREA , SEOUL
          다윗 온라인 교회

     PASTOR.  DUK SOO     YOO
               유덕수 목사 
       ( psalmssermon. blogspot.com )




     < 오늘의 말씀 >
 우리는
 미래의 찬란한 도약의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한
 신앙적 행보로

 잠자는
  꿈을 활성화시켜 가기 위해서

 집에 이상 계속
 칩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불치의 생활고의 고통으로 다가
 경제적 치명타를 가하는 가난함을
 내가 직접 나서 해결할 있도록
 집에만 이상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집에 신앙인들이 계속 머물수록
 우리에게는 가난함 만이 궁핍함으로
 다가 뿐입니다.


 우리는 가문 번영의 꿈과
  인생의 목적을
 필히 손으로 달성해 가기 위하여

 당장 내가 어떻게 현실로 들어가
 직접 활동하고 움직여 가야

 현실 분야의 과감한 진입을 위한
  행동 방법을 모르지만

 내가 기가 꺾여 지낼


  그가  피동적으로 생각하기를
 현실에서 마땅히 일이
 내게 있어야

 그는 비로소 가서야
 움직일 있다고
 항상 오판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새로운 인생의 출발선 상에서

 예측 불허의 소용돌이로 다가오는
 인생의 리스크를 감내할 생각이
 크게 부족한 사람들을 향해
 신앙적 교훈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지금 곳이 없어
 항상 빈둥거리며 한가로이
 일정한 곳만 다니고 있지만

 당장에 내게 넉넉한 현금이 없는
 상황에서 그로 인해 나의
 생활 활동 반경이 자꾸 축소되지만

나에게 이런 고통스러운
비참한 현실이 되어 나를 괴롭힐

비극적 현실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
다가온 현실이 뿐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과연 어떤 마음속의 생각을 품고

오늘까지 신앙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신앙적 목적을 갖고 신앙 생활을 참고
인내해 왔는가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우리의 가까운 신앙의 이웃
신앙적으로 가까운 생활 주변이
가져다 신앙관의 영향력이

신앙의 탄생을 낳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신앙을 오늘까지 가르쳐
주변의 신앙적 가르침의 제한된 영향력과

그에 따른 만의 신앙의 길을 내가
선택함으로 내가 어떤 길을 계속 걸었는가
살펴 보아야 합니다.



* 1~2세대 ( 1960~ 1980) 있었던
 한국 기존 교회의 낡은 신앙적 주류의 행보가
 오늘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막대한 신앙적 영향력을 주면서
 지속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 오늘의 핵심 주장>
종전 과거 한국의 대다수의 기존 교회들의
기독 신앙의 가르침에서 탄생한


기독인들의 삶의 행보와 방향 설정에서
오늘날에 맞지 않는 적지 않은 신앙적 폐단을 낳는
성서적 내용과 현실과 불일치 상황을 낳고

시대적 조류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많은 신앙적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1970~1980년대 한국의
   기도원 신앙주의 운동과
   성령의 은사 중심이라는
   신앙의 길을 선택한
   인생의 시나리오 >

기도원 금식,
성령의 은사 주의 신앙 생활에는 많은 신앙적
본보기가 되는 면도 있었지만

금욕 주의적 신앙으로 흐르는
때로 많은 신앙인들이
사회적으로 적응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신앙적 폐단도 수십년이 훨씬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도 적지 않은 신앙적 근본적
신앙관의 주류를 이루어 가면서

계속적으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쓰고자 합니다.

기존의 과거사적인 신앙적 가르침의 길에서
교훈을 끊고, 길에서  파생된
많은 피폐화 현실 도피주의적인 삶을 낳는
신앙적 폐단을 끊고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과거 (1970-80)
기도 생활을 위해
현실을 버린
어느 인생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장 기뻐하시는
길이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께
기도로 물었지요.


 신앙의 열심을 내는
  만을 찾으려 하고

 자신의 일과 시간을 드려 헌신하며
 찾았던 천국 여정의 신앙의 길에서

 기존의 신앙인들이 걸었던
 주변 신앙적 분위기에
 더욱 익숙해져 갑니다.

 남들도 그렇게 열심히
 여러 기도원을 찾고 교회에서 열려지는
 부흥회를 계속 찾고 돌아다녔으니


 나도 그런 기존 과거사
 역시 주변의 신앙인들처럼
 내세 지향적인 신앙 생활의 길을 걷자!


그는 그가 가장 옳은 신앙의 바른 길처럼 여겨
성령의 은사 주의 기도 운동에만 참여하려 하고

결국 현실을 악하고  더럽게 여기고
하루의 일과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죽은 인생의 사후의 내세 만을 찾는
신앙의 길을 가장 본이 되는 
길로 여기게 됩니다.

 신앙의 바른 규범을 지키는
 신앙인의 길이라 여겨
  길을 사수하고 지켜가게 됩니다.


 그가 천국을 향해
교회마다 돌아다니면서 예배에 참석하고
 가장 열심을 내는 최상의 신앙의 길을
 찾으려



 그가 처한 차가운 현실을
 한사코 회피하려 들기만 하고

 기도원과 부흥회 만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현실을 혹독함을 회피하려 들고

 남들은 돈을 벌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혹독한 피뿌리는 경쟁을 마다 않고 사는
 상황에서 자신은
 

 가혹한 세상 속에 진입해 들어가
 세상속에서 가업을 위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 창출이나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으려 하는 곳에서

 가난에 힘겨워 하는 어려운 현실이 오게 됩니다.
 
 내가 당연히 생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동안 가르쳐
 금욕주의적 신앙적 교리적 사슬에 묶여

 비활동적으로 기도만 하면서 살면서
 험난한 세상 안에서 들어가
 세상인으로 동참해서 살기를 거부하고

 세상 안에서의 생존을 위한
 모든 활동을 죄악시하거나

 금기시 하는 내세 지향적
 현실 도피적 신앙 생활을 하려
 했다는 신앙인들도 다수 이상이
 항상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 하나님을 위한 신앙의 >
 내가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세상과  화합되는 과정을
 피하려 것도

 일부는 성도의 생각에 따라
 좋게 평가된다고 생각하고
 여기고 세상을 버렸음으로
 그는 경쟁력에 항시 뒤쳐진
 자신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열망과 생존 욕구를
 지나치게 더럽게 여기고 죄악시하고

 현실을 한사코 외면하고 도외시하고
 오직 천국 만을 바라보려고
 신앙적인 열심 만을 내는

 그런 현실 도피주의적인
 신앙의 길을 선택하려 했지만

 그가 현실에서
 심은 대로 거둘 뿐이라는 점입니다.

 기도만 계속 심었으니
 기도라는 영적 열매만 나왔을

 하나님을 위해 희생한 그와 가족들에게
 생활 자금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는 점입니다.
 
 세상을 그가 한사코 오늘도 거부하고
 내세 피안의 세계에서
 진정한 신앙적 목적과 꿈을 찾으려고 하지만
 현실에 들어가지 못하고는 현실의 기업이
 절대로 열려질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중세 수도사들이
 중세 시대와 고립된
 동굴 생활과 사막 은둔 생활에 익숙해져
 고립된 상황속에서 신앙의 길을 찾았던

 수도사들이 걸었던 은둔주의 신앙의 길이

 한국 기존 교회의
 기도원 은사 주의 운동의 영향력을
 낳았습니다.

 오늘에 이르러 서도 오직
 기도원 은사주의 신앙 생활 만을
 계속 찾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현실 도피적인 신앙의 만을
찾으려 하는 은둔 신앙 생활 방식과
다름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려는
 뜻에서 고결하게 찾으려 신앙의 길이
 오직 자신이 생각한 길을 따라

 천국을 위하는 신앙의 열심을 내는
 길에서 신앙적 순수성이 유지된다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그의 생각 속에서 은둔주의 신앙
 세상과 거의 고립된 신앙의 폐단을 낳게 됩니다.



 자신의 신앙 생활의 영적 행복을 위해
 신앙인으로 기도만 하는 신앙 생활을

 현실 도피적인 신앙 생활 방식으로
 굳혀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져
 천국의 채널에만 그의 신앙을 한정시켜 삶을
 고정시키려 경우

 그런 길에서 그는 천국만 찾으려 하고
 세상과의 영원한 결별 선언을 하게 됩니다.

 결국은
 스스로 포기한 세상 진입을
 자진 헌납한 상황에서

  일년이 가도 수십년이 가도
  아무 것도 그는 자신의 독자적 재산을
  그가 소유할 없는 가난함을 낳게 되며

 전혀 소득이 없는 경제적으로
  소득이 끊겨진 가장 최악의 힘든
 궁핍한 생활 만을 낳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들 다수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은연 중에 하나님의 종의 길을 걸으며

 기존 교회들의 다수가 걸었던
 기도원 주의 금욕적 신앙적 운동에
 거룩한 열심으로 참여했지만


 결과는 성서에 기록된 것과 같이
 공평한 소득의 분배가 없었으며

아무런 경제적 소득이나 번영이 뒤따를 없는
피안의 세계에서 머물 밖에 없는
상황이 가져온 현실적 결과로서

비참한 인생이 있었을 뿐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
 중세 신앙의 금욕주의적 신앙 방식에 걸고

 세상과 동떨어지고 스스로 고립되는
 신앙적 상황은 결국은 천국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려는 생활을 고집할
 너무나 경제적으로 자립조차 힘든

 가난한 생활 만이 계속될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과거의 신앙인들이 매우 기뻐했던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걸었던
 기도원 중심에 신앙을 걸었던
 사람들도

 아직도 과거적
 금욕적 신앙 생활적 패턴을 버리지 못하고
 가장 귀한 생활처럼 여겨
 천국의 진주처럼 중시

 우리는 세상에서 고립되는
 금욕 주의적인 신앙인들이 걸었던
 기도 만을 최우선시 하는

 신앙적 올가미 상태에서
 여전히 가난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서 고립된 채로 살며
 스스로 생존의 자립 인생의 길을
 해결하지 못한 남에게 의존하는
 비굴한 인생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 때의
 기도원 은사 주의 신앙에
 몰입될 금욕주의적
 은둔 고립 신앙의 만을 찾으려 하고

 다른 현실과 동행하는
 진보적인 신앙의 길을 보이콧하고
 혹한 설한에 바람을 쐬어가며 한기를 느끼면서
 철야를 지속하고 바람이 돌아가는
 냉골에서 참고 기도하고

 오직 그런 기도 중심의
 현실 도피적 신앙의 만을 따르고 믿었기에

 우리도 역시 중세의 수도사들처럼
 은둔 주의적 중세적 신앙인들이 걸었던
 고립된 인생의 만을 최상의 신앙의 길처럼 여겨
 아직도 길을 지속적으로 찾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

 세상은 자신을 위한
 삶의 현명한 선택을 통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해서

 세상 속에서 많은 경제적인
 부를 독식하는 기회를
 혼자 독점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신앙인들의 다수가
 세상과 결별을 선언하고 오로지
 신앙의 길에서만 머무르려

 오직 축복의 기회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독점적인 기회처럼
 계속 그들을 위해서 열려지는
 그런 상황 만이 오게 된다는 점입니다.


 신앙인들이 사후에 전개
 오직 하나님의 나라 만을 찾고
 세상에 들어가려 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된 은둔주의적 내세 만을 지향할


 교회가 그렇게
 내세 주의 신앙의 바라보고
 세상과 결별을 선언하고 세상과 결별해
 세상을 떠난 순간

 세상에 펼쳐 가장 좋은 인생의
 모든 좋은 기회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에게
 모두 돌아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 만이
 경제적 부의 창출 기회와
 세상 권력 창출의 호기를 맞고

 오직 그들 만의 것처럼
 모든 세상의 좋은 것들을 한꺼번에
 독식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 금욕주의가 가져
      신앙적 폐단

 교회는 
 오직 예배 생활과
 기도 생활에

 전적으로
 충성을 다하는 길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그런 신앙적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신앙인들이
 생존을 위해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더러운 분뇨를
 밟고 가듯이
 나쁜 길로
 간주함으로

  인생의 근본적인
  생활고 해결과

   이방인들처럼
   기업의 창출을
   도모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죄악시 함으로

   영원한 가난함에
   던져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 금욕 주의가
다수 교회들과
신앙인들을 가르쳐
훈계할 )

그런
중세적 신앙관에
매인 신앙인들은

교회가 그릇
가르친 길을 따라

사람들의 인생의
정상적인
행복한 생활을
등한시 하도록

금욕주의
신앙의 길로
유도하고

오직
기도 생활 만을
강조하는 상황이

신앙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활동 영역을
포기하도록

내세 지향적
신앙으로 삶의 폭을
제한하려는 상황이

가난의 울타리
안에 어둔
슬픈 인생을 낳았고

신앙의 길이
가난하고 슬픈 그늘
만이 있게
뿐입니다.

신앙인이
세상에 들어가
돈을 버는 것을
죄로 여겨

세상의 부를 창출하려
경제 생활을 하려 하지
않을 경우

다른 대안의
길은 없고

영원한
대대로 이어지는
찢어지는 가난한
인생 만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점입니다.




* 기존 기도원 은사 주의
  금욕주의적 신앙이
  가져 폐단

 기존의 다수 신앙인들이
 그들의 신앙상의
 신앙의 철칙으로 굳게 지켜 가는
 세상과 담을 쌓는
 기존 신앙의 사수의 외로운 길에서

 신앙인들은
  세상과 대립하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는 언제나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세상 안으로 들어가

 세상과 화합하는 길을
 내가 선택함으로

 내가 스스로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을
 걷는 것이 과연 타당한 길인 ?

 과연 인생의
 최후 사후에 겪게
 신앙인으로서 들어가게
 사후의 세계에서

  나는 어떤 신앙적
  사후 인생의 결과를
  만나게 것인가?


 * 신앙인들의 속박

 그렇게 과거의 때의
 늙은 신앙인들은
 세상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고립을 스스로 자초하고 
 은둔주의 신앙의 길을
 걷고 싶어하게 됩니다.

 그가 항상 현실을 떠나
 내세 지향성을 현실 도피적
 신앙관의 만을 걸으려

 우리는 현실 진입을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길로 여겨
 오히려 마음의 죄로
 간주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현실 도피적 금욕적 신앙의 선택이
 가난의 사슬과 자신의 삶을 제한하는
 영적 속박을 가져 오는
 죽음의 괴로움의 고통을 낳으며
 자신이 영적 속박의 사슬에 묶여

그가 일하기 위해서
사회로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것으로 여겨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생존을 위한 활동이라
여기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삶을 그래서
지극히 일부 영역으로 제한하려 들고
현실에서 살게 되는 것을
지나치게 꺼려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 우리의 신앙관과 출발 >

 우리는 과거 수도사들이나 걸었던
 금욕적인 은둔 고립 신앙의 길에서
 필히 벗어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직도 많은 신앙인들은
 기존의 신앙관의 교훈이라는

 금욕적 신앙의 가난의 사슬에 묶여
 살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고

 세상 속에 들어가는 모든 행위를
  죄악시 하며 금기시 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길로 여겨
 기회를 마다하고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생활 자금이 끊겨진

그곳에서는 그가 비록 열심 있는
신앙의 길을 외골수 길처럼 굳건히
지키려 했지만 오히려 결과는

 인생의 밑바닥 만이 훤히 드러나는
 영원한 인생의 패배자의
  만이 전개 뿐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의 속박의 사슬

 중세 신앙인들이 걸었던
 수도사들이 걸었던
 금욕적 신앙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고립된 은둔 신앙을 중시하는
 고립된 신앙의 사슬

 어둠의 금욕주의 신앙관의
 죽음의 가난의 사슬의
 족쇄를 끊어야 합니다.  



 < 기존 신앙관 : 한국적인 기도원 은사 신앙의 폐단 >
 < 금욕주의적 신앙적 교리가 빚은
   어두움의 족쇄의 사슬>

기존 신앙의 가르침이
사슬이 되어져
기존 기독 신앙을 꽁꽁 묶었다는 점입니다.

신앙인의 활동 영역을
교회 안으로 강제로 꽁꽁 묶어
속박의 사슬에 꽁꽁 묶여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일평생 제한된 영역 안에서
 부여된 허락된 좋은 인생의 기회를 상실하는

 금욕주의적 신앙의 만을 따르며 살도록
 강제적으로 교권의 압력을 가하는
 교리적 가르침이

 신앙인으로 하여금
 은둔주의적 고립 신앙을
 강요한 측면이 깊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족쇄가
 신앙인들의 자유로운 일상 생활을
 속박하고

 신앙을 빙자해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세계가 추구한다는

 참된 신앙의 선을 명분을 내세운
 기도원 주의 은사 신앙과
 내세 지향적 현실 도피적 신앙을 퍼뜨릴

 신앙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다가오는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세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의 활동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됩니다.

 모든 사회적 기득 권한을 잃게 됩니다.

 자기 의지로
 스스로 인생을 포기해
 인생의 승자의 길에 진입하지 못하고

 인생의 번영의 문턱에서
 기회를 더럽게 여겨 버리거나

 자동 탈락하는 상황을 낳고 모든 권한을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모두 빼앗기는
 어리석은 은둔자로서 도피적인 생활 방식을
 낳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전적으로 금욕 생활 하고
 세상을 떠나 살면서

 일상 생활을 포기한 채로 오직
 기도 생활 하고

 천국을 위해서
  인생을 희생하며

  자신의 인생을 
 모두 포기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많은 주의 종들의 호소 >
 < 신앙인들의 애타는 기도와 호소 >

 많은 한국의 주의 종들이
 경제적인 가난의 고통과 괴로움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기도하지만

  세상은 재벌 기업도 있고
 번영을 누리며 낙을 누리고
  먹고 잘사는

 우리에게는
  이토록 지속적으로 끝나지 않는
 가난함 만이 지속됩니까?





 우리는 세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가야 합니다.

 인생이 세상에 속해져
 지옥에 속한 어느 누구 한사람도

 하나님의 진실한 나라를
 위하려 들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속한 나라는
 세상의 나라의 이익 만을
 그들의 일상 생활속의 관심사로 가질

 하나님의 나라와 이해 관계에서
 항상 무관할 뿐입니다.



 천국에 속한
 하나님의 나라의 종들과
 사람들이 그런
 지옥과 천국이 사실을 정확히 모르기에

  악마의 영에 속한 악의 나라가
  천국을 위할 줄로 알고 착각해
  도움이 것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도움은 이해 관계가 없는
  지옥과 천국 사이에
  상호간 협력적 교류와 도움을 껄끄럽게 여기는
  상황에서 쉽게 호락호락 허락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신앙인들은
  어리석은 기다림 속에서
  아직도 경제적인 도움을 달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지만 

  천국은 천국의 귀한 종으로
  부름을 받은 분들에게 가르칩니다.

  이해 관계가 없는
  남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 결론 >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서
 세상 안에서 새로운 인생 번영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을 전하지만

  길이
 하나님을 떠나서
 천국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라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다수의 신실한 신앙의 길을
 찾기를 원하는 기독인들이

 내세 지향적 신앙의 길을 따라
 세상의 좋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할

  세상은 옳구나
  모든 열려진 좋은 기회를 독식하지요.


  국가의 생존이 걸린 기업의 창출이
  어느 누구인가 감당해야
  
  기독인은 돈을 버는 길을 죄악으로 여겨
  스스로 포기하고 물러서게 되고


  이방인들은
  절호의 금권 창출의 기회를 잡고
  기득권 권력과 사회적인 분야의 여러 권한
  경제력의 부의 막대한 금권력을 창출할

  세상에 속한 사람들 만이
  경제력 권한을 독식하는 독점적 권리를
  가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많은 국가의 예산 집행 과정에서
  혜택이 사회 계층들을 위해서
  예비되어져 있음에도
  스스로 포기하려는 기독 신앙인들에게는

  항상 모든 좋은 기회와 상황이
  멀리 비켜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다수의 신앙인들이
  오직 금욕주의 신앙을 사수하려 들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여겨
  배타적으로 대하고

  세상에 들어가
  부를 창출할 노력을 게을리 하고

  돈을 버는 것을
  더럽게 여겨 등한시 경우

  모든 경제적 부의 창출의 꿈과
  기회는 자동적으로 모두 사라지고

  모든 경제적인 삶의 풍요로움과
  기득권 경제력이 가져다 주는
  축복은 모두 남의 것이 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신앙인들이
  스스로 기업 창출의 기회와
  세상의 권한과 모든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포기한 상황에서 계속 이방인들의
  경제력 독점 시대 ( 한국 경제계 재벌 1세대를 말함 )
  이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만 차별하십니까?
우리에게는 경제적인
축복을 허락하시지 않습니까?

천국은 말합니다.

신앙인 자신이
스스로 천국의 축복을 포기한 상황에서
기도하면서

나에게만
축복이 비켜갑니까?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원망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기도가 된다는 점입니다.
  


 
 
  
  
  
  








 
 

  


 

  


Microsoft OneNote 2016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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