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오후 2:52
TODAY'S GOD
MESSAGE ( 2017-2-10)
THE CITY
OF DAVID , HOME
CHURCH
PASTOR .
DUK SOO YOO
오늘의 다윗 성 온라인 교회 말씀
작성자 ; 유
덕 수 목
사
< 오늘의 단상 ;
가난 속에 너무 어려워져 만 가는
아찔한 상황을 만나게 될 때
>
* 해결 방식
내게 닥쳐 온 곤궁한 삶을 적극 대처해 가기 위해서는
그 원인과 문제를 찾고 해결해 가는 생존 게임 방식에서
남의 힘 만을 의존하려 들고 그런 삶에서 머물려고 하는
삶의 생존 방식을 과감히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만 생각하지 말고
남을 기대려 드는 그런 수동적이고 나약한 의식을
스스로의 힘으로도 고쳐 갈 수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오늘까지 내 자신의 힘으로는
비워진 텅 빈 돈 지갑의
돈의 부족함을 해결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남에게서 만
그 도움을 받기 만을 원하며
남을 바라보며 도움만이 오기를 기다려 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남은 나를 도울 필요성을
느낀 적이 결코 없었다는 점입니다,
남이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나에게 약속한 적도 없고
나를 돕겠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타인이 나에게 내가 필요로 할 때
" 나를 도와 줄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언젠가?
나를 도와 주기 만을
한사코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세월을 기다리게 되지요
- 세월아! 세월아 !
- 흘러 가지만 말고 나 좀 도와줘 봐!
" 기다리면 시대의 흐름의 판세와 여건이 바뀌고
언젠가, 누가 나서서 나를 도와 주겠지? "
이렇게 무한정 기다리는 남을 기대려는 생각은
어리석음 만을 낳게 된다는 점입니다.
어리석음은 가난과 고통과 괴로움 만을 낳게 됩니다.
가난 속에서 질병과 고통의 연속,
주변의 따가운 시선,
가족들 간의 불화의 연속이 이어 집니다.
자중 지란(自中之亂; 같은 무리들 안에 일어나는 싸움)이 일어나
가족 간의 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스스로 자신까지 자학하려 드는 극한 상황에서
가족 들 간의 불화의 고통의 빈도수는
더욱 높아져 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를 괴롭히고 피 눈물을 뿌리게 만드는
괴로운 현실은 가차없이 흥부의 뺨을 휘갈겨 때리며
흥부를 낮은 존재로 아래로 낮춰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꾸 남에게 기대면서
남이 나를 도와 주기 만을 바라고 살게 되나
현실은 애초(당초; 當初; 맨 처음) 부터
남이 나를 도와 줄 그런 의향이 거의 없었기에
결국 나의 가난한 상황 만을 끊임 없이
계속 연장시켜 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타인의 능력 만을 의지 하려는 생각 만에 내가 휩싸일 때
나는 남의 능력 만을 의지하려 드는 상황에서
비굴한 처세를 하며 남의 인색한 도움 만을 받으려
남의 눈치 만을 보면서 살게 됩니다.
내 의지는 실패속에서 꺾이고
내게 닥쳐 온 난관을 극복하려는
능동적인 삶의 의지는 사라지고
남의 눈치만을 계속 살피려 드는
그런 피동적인 삶의 의지로
나의 주관을 상실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내 문제와 난관을 해결하기에 앞서서
적극적으로 삶을 대처하지 못할 때,
어느 누구도 나와 무관하기에
나와 가족을 위해 남이 나를 돕지 않게 된다는
점을 알고 가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가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살게 되는 수도
많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직접 나서지 않으면
나와 가족들의 고통과 가난이
멈추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남은 나를 돕지 않기 때문에
나와 가족들의 슬픔은 저주의 꼬리를 물고
영원 하도록 그 고통은 나의 주변을 맴돌며
저주가 끝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나의 기나 긴 슬픈 과거의 날이 지났음에도
오늘에 나는
과거의 몸서리 치는
처절한 고통을 수 없이도 겪었음에도
내가 언제 그랬나?
라고 치욕을 망각하고
쉽게 잊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 자신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에서 오는
그릇된 삶의 안일한 삶의 방식들이 원인이 되어져
고통이 연이어져 계속 나쁜 상황 만이
나를 괴롭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 자신의 삶 속에 깊게 뿌리 내려진
남을 의존하려는 생각을 빨리 탈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생 고생살이 에서 벗어나기 위한 삶의 제언>
내가 시대의 흐름세의 방향을 깨닫고 가는 것이
나에게는 고생을 덜하게 만들거나 벗어날 수 있는
현명한 삶의 길을 열게 됩니다.
시대는 과거나 오늘 이나 과거의 여느 때와 다름이 없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나는 시대가 나의 생존을 위하며
나의 삶의 평온한 삶의 권리를 허락해야 된다고
원하고 원하지만 나를 가차없이 때려 치는
시대는 나와는 항상 다른 생각을 품고
흘러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 가야 합니다.
나의 이해 관계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대를
내가 바라다 볼 때는 휴 한숨 속에서
거듭 원망 만이 가득 찰 수 밖에 없게 되지만,
시대의 흐름을 내가 원망 하기에 앞서서
때로는 왜 내가 오늘의 이런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져 살아가게 되었는 가에 관해서 그 원인을 제공한
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능력을 찾고 냉철하게
나의 이런 오늘이 오기 까지의 내 삶의 과정을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내가 현실과 미래를 미리 사전에 철저하게
대처해 가면서 준비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남을 원망해 직접 비난의 화살을 쏘아 대거나
남의 장점을 낮게 평가해 나를 높이려 드는
그런 처세로 나에게 다가온 고통과
여러 난관을 해결 하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하기가 쉽게 된다는 점입니다.
나의 게으름과 내 마음은 노력을 회피하려 들고
편안함 생활 만을 계속 원하게 되고
자꾸 어려운 일을 회피하려 드는
안일함 만으로 치닫게 될 때,
고생살이 만이
그를 괴롭혀 푸대접 하며
그로 하여금 크나 큰 슬픔에 빠지도록
그를 때리며 매몰차게 내리 치게 된다는 점입니다.
<해결책>
내가 내 정당한 국민 으로서의 보편적인
삶의 내 권리를 시대를 향해서 주장하고,
내가 일어나 전진해 가야 합니다.
남은 나를 위해 돕거나 희생하려 들지 않게 됩니다.
내 생각도 그들은 잘 모를 뿐더러
나를 위해 남은 더욱이나 자신을 희생하려
들지 않으려 한다는 다는 점입니다,
집단 악마 세력 들에 의해서 선점된 권력속에서는
나의 삶의 권리와 권한 으로서의
삶의 지분 취득을 위한 발돋움이 무너지게 됩니다.
<악마의 세력은 내 것 마저 빼앗으려 들기 때문에
강제로 집단 통제 방식을 동원한
무력으로 강하게 강압적인 방식을 동원해
통제해 가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일어나지 않은 이상
내 고통과 문제는 거의 해결되지 않게 됩니다.
남이 나의 고통에 관심도 없고 돕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난관에 봉착할 때
현실적 해결책들이 쉽게 나올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나의 문제를 남에게 만 의존하려는
그런 안일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스스로 일어나게 될 때 다가오는 고통들과
괴로움을 참아 가면서 현실을 잘 살펴가야 합니다.
나의 전진 없는 노력 부족이 이런 나의 과거가
오늘의 나의 괴로움의 상황을 만들었지요!
사회적인 신분 레벨이 너무 낮은 곳에서
호소하고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
비록 내 현실의 내 신분의 현주소를 내가 직시하고
현실속에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삶의 고통과 갈등의 원인을 발견한다고 해도
내가 스스로 일어나 내 고통의 원인을 찾아
꼭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통과 가난에 대처하는 내 의식을
과감히 바꾸어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빠는 돈이 떨어 졌지만,
이때,
자꾸 생각하기를
내가 당장 어디를 가서 돈을 구해야 되나?
그런 생각 만이 들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점점 더 가난해 지는 상황을 접할 때,
우리들의 비워진 돈 지갑을 구체적으로 해결해 갈
다른 해결
방법을 제안하게 됩니다.
아빠는 돈이 떨어 졌을 때
자꾸 남에게만 기대려 들지 말고,
남의 도움으로 만 살려 하지 말고,
아빠는 자신이 나서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어
비워진 지갑을 채워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가난을 보는 나의 시각,
내 생각을 바꾸어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내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 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길이 열려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내 생각의 기준을 바꾸어 가는
삶의 의식의 한 전환 과정이 필요합니다.
내가 나의 힘으로 일어나 해결해 가야 된다,
나의 이런 가난한 상황을 직접 해결해 보려는 방법을
우리가 제시하는 이유가 있지요!
사람 들은 악담을 하며 귀가 따갑게 말하기를
달려 붙는 데~
피하고 싶은 데~
' 저 귀 찮은 빈대 새끼 ' 라고 말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런 수모를 겪을 때
그는 그런 상황에서 이상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가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 하게 되는
자학하려 드는 행위를 일삼게 됩니다.
수모와 괴로움의 현실적 고통을
스스로 참지 못해서 스스로 자신에게 위해 하려 들며
손해를 감수하려는 자학적 행위를
일삼게 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나의 자학 행위로는
삶의 난관을 극복하기는 커녕
고통만 더 할 뿐이라는 점입니다,
< 고난과 역경에 처할 때 >
하나님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신앙을 갖고서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 안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향해서
무엇이 들려지고 있는 것인가를
정확히 듣고 그런 사항들을 과감히
" 실천해 가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자신의 힘으로도
해결해 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 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주의>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은총은 때로
어떤 신앙인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단 기간에 해결되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신앙속에 인내하며
그가 달려가면서 먼저 자신의 열망을 이루기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실천 할 때
차츰 점차적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가는
그런 경우의 삶도 있게 됩니다.
내 자신이 날마다 어렵고 궁핍해 져 가는
아찔한 상황을 만날 때
내 자신과 자식들이 날마다 쩔쩔 매며
괴로워 하고 너무 어려워 하는 상황에서
나와 가족들의 아찔해진 상황을 보고
내가 해결해 가기 위해 당황해 하지 말고 침착하게
내가 직접 나서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비워진 돈 지갑,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의 도움 만으로는 일시적 방편인
미봉책에 그칠 뿐이라는 점입니다.
근본적으로 현실의 가난을 해결해 가기 위해서
자신이 남을 도움 만을 의존만 하려 들고 눈치만 보려 하는
피동적인 방식으로 삶을 대처해 가려는 그런 처세 방식을 버리고
그 자신의 자존감을 던져 버리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도 극복 할 수 있다는
그런 자주 독립적인 사고관 아래에서
삶의 생존 방식을 스스로의 존재감 회복을 위해서 라도
서서히 바꾸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난과 가난이 다가 올 때,
내가 직접 나서 해결하려는
그런 자주적 생각을 갖고
생활 방식을 바꿔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어려움의 상황에 울며 쓰러져 현실에 굴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기도하고 예배 드리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스스로 힘으로 일어날 때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지는
가능성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게 됩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고 움직일 때
내 스스로의 힘으로 그 길을 열고 찾을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KEY POINT)
기회는 기다리려 만 들지 말고
내가 나서서 스스로를 위해 찾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도하실 분은 아래의 글을 따라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주님(예수님)!! "
" 저의 이 비참한 곤경속에서
저를 건져 주시기 원합니다."
" 저의 이런 저주 상황에서 건져 주시기 원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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