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수요일
오후 3:00
TODAY'S GOD MESSAGE
* 지구촌 신앙인 사회는
천국의 용사로 출전해야 합니다.
천국은 양들의 조직으로
구성이 된 조직입니다.
천국의 조직은
성도로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2021. 2. 3 수요일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PASTOR. DUK SOO YOO
다윗 성 온라인 교회
유 덕수 목사
- < 지구촌 사회 안에 밝혀져야 할
천국의 진실 >
개신교의 신앙인 사회는
더 이상 영적인 아이의 상태로 머물면서
힘겨운 삶을 살면서 고통 속에서
푸념 만 토해내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인 사회는
원대한 천국의 약속을 믿고서
그 약속이 이루어질 날이 속히 오기를
학수고대해 왔습니다.
언제나 내 현실로 천국의 약속이 이루어 지고
구체화 되는 내 일과의 복으로 다가오게 될 까?
우리는 슬픔 속에 격정 속에
때로는 분노를 참지 못해
세상을 향해 그들 사회가 전혀 듣지도 않고
악인 사회 그들의 귀에 들리지도 않는
고함으로 소리 높여서 소리도 쳤지 만
세월은 흘러가도 악한 세상은
절대로 변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분개심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노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밤잠을 설쳐 댄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내 현실의 고통은 영원한
고요한 자연의 침묵 속에 묻혀져 가는
밤의 고요함에 쥐 죽은 듯
제 풀어 죽어 살아갔던
내 어두운 현실의 고통을
잊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흘러 내리는 내 슬픔 속에
눈물을 참고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기다려 왔습니다.
천국의 복이 임할 것이
굳게 믿었기에 고대해 왔으며
한시라도 나의 미래에
대한 큰 거대한 꿈을
상실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미래의 벅찬 기대감 속에서
큰 포부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새롭게 다시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을 느끼면서도
시대와 시간이 나를 따라주지 않는 것을
한탄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열기를 원하지 만
내가 소원을 놓고 기도를 해도
여간해서는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고,
혼자서 수모를 겪는
내 갑갑한 쓰라린 현실의 길을 가면서
내가 내 힘으로 안간힘을 다해
내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을 해도
언제나 내 목적 달성을 향한
내 삶의 행보가
목표의 고지에 이르기 전에
이미 팍 기가 꺾여져
고개가 숙여진 현실을 봅니다.
현실의 계획은 땅에 떨어지고
미래의 계획은
목표 달성이 전혀 불가능처럼 여겨져
그동안에 추진했던
나의 일이 허상을 쫓았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거의 꿈들이
손에 당장에 쉽게 잡힐 듯한
현실처럼 보여졌던 성실히 걸어 간
내 목적을 향한 하루의 일과가
꿈이 무너진 현실을 더욱 촉진할 때,
내 현실의 도약을 위해 발버둥을 쳐도
여전히 길이 막혀질 때,
어떤 인생은
현실에 쉽게 좌절해서
막가는 막가파 인생이 되거나,
그가 신중한 차분한 심성의 소유자라면
심사숙고 하면서 착시 현상을 따라서 내가
신기루를 따라 왔는가?
라는 느낌 속에 살게 됩니다.
이제는 더욱 인생들이
여기 저기서 서로 간에
폭발적으로 악한 말로
상대를 가격하는 데서 가차없음이
상대방을 관용으로 용서함이 사라진
새로운 시대가 경제적으로 낮은 소득의
푸어 상태로 전락한 사람들이
존재감이 떨어진 현실에서
막말로 내뱉고 화를 내면서
서로 간에 죽일 듯이
상대를 치고 싸우는 상황에서
날마다 각박해 지는 현실을 봅니다.
우리는 이제 아예 현실의 통로가
더욱 더 고용의 채용 한계치에 달해서
특정 계층 계급 사회에게
직장 채용의 기회의 문이 좁혀지고
완전히 생존의 길이 다 막힌 상태에서
나의 꿈을 바라 볼 수 있는
사회적 배려와 여건이
늘 과거처럼 배려 속에서
전혀 허락이 된 적이 없는
사회적 여건이 내 계획을
다 포용할 만큼
길이 넓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의 생존을 위한
기본 생활조차 흔들리게 됩니다.
삶의 기본적 생존의 여건조차
공급이 닫혀지고 막혀지고
삶의 기초 여건은
전혀 여러 부족한 제약 뿐인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일을 처리할 방도가 없고
삶의 제약 뿐인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애통하게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속에서
미래에 성취되기를 원하는 계획을 향한
그 길은 너무 불가능처럼
더욱 요원한 길처럼 보여지고
그 것은 성취가 거의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처럼 보여집니다.
|
여러분을 위하지 않는 세상은 오직 자신의 방식대로 마구 흘러가는 일방 통행로 상황이
우리에게는 더욱 심기가 불편하거나
막다른 삶의 위기 벼랑길 절벽 위에서 아찔해 지는 상황이
심각한 두뇌의 괴로움과 고통 만을 더할 뿐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자신 만을 위한 입장에서 서 있기에
모든 것을 자신의 것처럼 양보하려 하지 않고 독식하려 처세하지요.
한국 신앙인 사회는 해묵은 낡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 시대에서나 적합한
이타적 기존 교리에 묶여져 이방 세력들에게 굴복하며
맞대응 하지 못한 나약한 처세를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 경제 분야에서 이방인 독식 사회 구도를 무너뜨려가야 합니다.
지구촌 다국적 기업의 경제력 독점 재벌 탄생의 기업의 역사를 일구어 낸
한국 사회의 재벌 경제계 주역,
한국 경제 주역이 된 이방인 사회가 누리고 있는
금권 경제력 창출 기회의 기업의 권한을 더 이상
이방인 한국 경제 권력의 중심 재벌 기업에게 금권의 중심을 양보하려 들지 말아야 하며
세상을 위해 신앙 공동체는 이방인 세력들에게 굴복하는
약자의 입장에 서서 비굴하게 영합하고 푼돈에 되팔려
한국 경제의 중심을 다 빼앗기고
한국 중심 사회에서 변두리 세력으로 밀려나는 정치 권력, 낡은 구 권력,
경제계 약자의 희생의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인 사회가 독자적인 자력의 힘으로 기득권 진입은 거리가 멀고,
이해 타산에 너무나 밝은
세상과의 갈등과 충돌 상황에서 생존 적응력을 갖추지 못해
치열한 경쟁 구도에 살아남지 못하는 약체 조직 상황으로
패배자 자리에서 이방인 강자 주도의 방식에 적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적 가치관과 생존 방식으로는 세상의 방식에 때로
가치관이 다르기에 적응하기가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기존 한국인 구 시대를 주도한 신앙의 낡은 사회는
이방 세력에게 굴복하거나 부화뇌동하고 살았지 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이제 슬픈 내 과거를 딛고 기존의 신앙인 사회가
걸어 간 비굴한 그런 길에서 과감히 벗어나 스스로 독립 노선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스스로 함께 세상의 악의 세력들과 어울려 적과의 동침을 시도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을 더럽히며 기득권 경제계 세력을 독식한 이방인 재벌들이 형성한 한국 기존의 경제 독식 구도에 편승하지 못한 채
이방 세력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꺼려한 내 외통수 현실이 결국은
세상의 기득 권한 창출에서 나에게 접근 기회는 커녕
세상의 정치, 경제력 권한과는 너무 관계가 너무 멀어진 사회적 권력과 사회 중앙과 연결 고리가 끊겨져 결별한
비극적 현실이 차가운 동토의 상황 만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한 못난 내 모습으로 전락된 내 현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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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존의 한국 사회의 주역
이방인 금권 경제계 재벌 세력의 이방 재벌 사회의 금권 경제력 주도 방식인
한국의 기존 재벌 경제의 독식 구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방 세력에 편승하는
그런 기득권 경제에 종속되는 그런 사회적 기득권에 복종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인생이 비극적 인생을 낳는 이방인 주도의
사회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낡은 기존 신앙관을 탈피해야 합니다.
새 독자적인 새로운 신앙 노선을 걸어가며
경제 독립의 길을 위해 기도하는 새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이방인 세력에서 굴종하는
가롯 유다의 처세를 벗는
신앙의 독자적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낡은 신앙관에서 탈피하는 길에서
자주 독립적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하며
이방 세력의 금권 경제 주도적 구도에 불복하고
그런 상황을 촉발한 무능한 기존의 신앙 노선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주도하는 신앙 노선을 따라서
우리가 한국 경제의 중심이 들어가는
독자적으로 경제를 주도할 수 있는 미래 경제를 향해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한국 사회의 재벌 경제계를 주도해가는
그런 독자적인 경제 노선의 길을 추구하고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한국 경제계의 기존의 이방 재벌 경제의
주역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들이 정권에 힘입고 기존 법조계 법의 권력의 묵인하에
투자 은행과 세계 은행으로 온갖 기득 권한을
한국의 금권으로 독식하면서
오늘의 우리의 슬픈 현실을 만들었기에
우리는 그 길을 청산하고 미래의 우리의 행복을 꿈꾸는 복된 행복한 사회로
우리의 낮은 위상을 벗어나기 위해 이방인 세력과 일전을 감수하고
세상을 우리 중심 세상으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
우리의 과거 신앙의 조직은
거의 늘 100년 이상
한국인 사회의
시대 경쟁력에 뒤쳐져
모든 기본적 삶의 요건들이
마비되어 생존의 가능성과
성공 기회가 다 닫혀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방인 경제 재벌들에게
힘겹게 근근이 의존한 채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푼돈으로
내 생계가 채워질 수
밖에 없는 궁핍한 어려운 현실에
피안의 세계 만을 바라보고
기도 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방 세력에 대해서
현실 상황에 적합한 방식으로
반격 행동을 취하고
분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다 >
내게 부족한
배고픈 현실을 벗기 위해서
푼돈에 만족하려는
생활을 끊어가야 합니다.
우리들의 납작 낮아진 코를
다시 높여가야 합니다.
우리의 낮아진 존재감과
내 인생 목표치의 이상을 더욱 높여
우리 스스로의 내 인생의 행복감을 되찾고
우리 자신의 위상을 높여가야 합니다.
이방 주도적 경제 현실에 굴복해서
싸구려 푼돈에 나 자신을 싸게
팔아 치워 그들 이방인 경제
독식 사회가 지속되는 것을
용인하는 길을 탈출해
악인 독식 사회를 끊고
악의 세력들의 공격적 행보를
피해를 막기 위해 전사들이 나서서
힘껏 차단해 가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의 삶의 현주소가
너무 비참해 지고 있습니다.
비참해 지는
내 생활을 탓하기에 앞서
비극적 삶에 던져지는
원인을 파악해서 대처해 가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경제계의 주역은
재벌 1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이방인 독식 구도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까지 이방인들이
한국의 경제 주역이 되어져
재벌 경제계를 주도해 왔으며
이방인 재벌들이
그들 만의 독식 리그로 누려간
금권 세력들이 누려 간
그들이 독식 주도한
세월의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경제계 재벌 중심 사회가
경제계의 권력 터줏 대감으로
자리 잡아 살면서
구시대의 정치세력 들과
야합한 것과
그들의 재벌 주도권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벌여 간
체세술의 횡포가 모든 사회적
권력 사회와 공존하는
협력 관계를 맺어 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소수를 제외한 기존 교회도
대다수가 악의 세력과 적극 동침하는
비굴한 가롯 유다 행보에 동참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곳에 참여해서
예수님을 싼 값에 팔아버린
한국 내 신앙의 양심이 더럽혀진
기존 교회들은 낮춰지거나 아예
그들의 기득권 행보를 마감해야 합니다.
이미 한국 사회가 기존 교회들이
저지른 타락한 영적 행보를 기억하고
인정하고 실체를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을 바라보고 평가할 때
기존의 교회의 사회적 처신이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용인하도록
이방인인 주도적으로 집행한
사회적 경제력 독점,
정치력 독점,
법의 권력의 독점 등
이방인 사회의
족적(발자국, 발자취)으로
발견되는
사회적 분야의
독점 기득 권한을 묵인하는
방관적 시절을
낳았다는 점입니다.
기득 권력을 차지한
이방 세력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이방인들의 사회적 주도 권한이
한국 경제를 이방인 경제계,
이방인 기득권 중심 사회를
한국 사회의 텃세 기득권
세력권을 형성하며 독식해 온
기존의 독식 구도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
이방인 사회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 기득권 권력 사회의 주역으로 모든 분야의 독식 구도를 형성해 왔습니다. |
한국 사회의 모든 경제계 분야,
정치 권력, 사회적 권력의 중심 안으로
신앙인 사회가 들어가
사회 주역의 자리를 찾고 행복 권한을 누리고
기득권 사회의 중심 세력권 안에 자리잡아가야 합니다.
|
우리는 기존의
과거 한국인 사회의
정치 권력,
법의 권력,
경제 금권 권력의
기존의 기득권 사회 주역들이
아직도 구 시대 세력을 유지하면서
기득권 사회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아직도 주도해 가는
경제 번영의 혜택에서 버려지고
생존의 길에서도 버려지고
사회적 일자리 분야와
모든 삶의 기득권 권한을 잃는
경제적 고통을 겪는 상황을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당연시 해왔을 뿐입니다.
약자 세력권을 형성한
신앙인 사회는 한국 경제의
모든 혜택에서 버려지고
푼돈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심각한 외톨이 가 된 상태에서
결국은 허송 세월을 하면서
경제력 금권의 행복 권한의 복을
남의 떡으로 만으로 여기고
내 힘으로는
경제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새로운 기업을
창출할 수 없는
모든 기업 창출의 여건이
막혀진 현실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가 현실에서 버려진 것을
남의 탓으로 만 여겨
나와 전혀 무관한
남을 탓할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 피가 끓는 와신상담의 교훈 >
현실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과연 누구의 탓인가 ?
내 어둔 현실이 다가온 것은
누구 때문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저주 받은 고통 속의 현실과
내가 벗어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흐름과 그 대세인
현세의 흐름을
거역하고 내가 피할 수 없는
닫혀진 내 어둔 현실,
가난하고 궁핍한 내 일생의
비극적 현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억울하다
하소연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늘의 비운 속의
운명론적 고통 뿐인 현실 속에서
한국인 사회내의
나의 낮추어진
내 신분 서열이
아주 낮은 계급에 속한
저급의 인생들인
악인들에게 조차
온갖 모욕당함을
꾹 참고 변하지 않는
악한 현실을 보고
분노를 터뜨리면서
살아 왔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 우리의 새 신앙 행보 >
< 천국의 검투사 전사로의 출전 각오 >
로마 제국 원형 경기 장내의
엄지 손가락 척,
아래로 내려 찍는
세상 모욕적 조롱을 참는
검투사의 출전을 앞두고
검투사는
적들의 머리를 베어서
승리해야 합니다.
죽음을 불사한 결단과
새 각오가 필요합니다.
우리 다윗 성 교회의
신앙 공동체 조직은
다시 분연히 일어나
새로워져야 합니다.
한국의 전반적인
거의 모든 신앙인의 조직은
하나로 통합이 되고
강한 협력 공동체 조직 사회로
연결이 된 협력 구도를 나누는
그런 신앙 공동체 조직으로
진행해 가야 합니다.
우리의 결정이
삶의 행보 권한이 보장이 된
더욱 향상이 된
미래의 삶의 발전과 향상을
이루기 위한 실천 행보를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
우리의 생존의 신분 서열을
스스로 낮추는 저급한 행위로
이방인에게 푼돈에 굴종하는
비굴한 행동을 멈춰야 합니다.
< 해석 주의 >
현 정권을 겨냥하고
빗대어 하는 말은 아닙니다.
엄지 척,
왼손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찍는
나를 경멸하는 그런 행동을 보면서
수모를 온갖 세상의 경멸 속의
핀잔의 잣대를 겪으면서 참고
참으려 하지 말고,
검투사로 들어 간 경기 장 내에서
포악한
로마 제국의 황제를 향해서
날카로운 창을 던져
적들의 수장의 목을 찌르고
벨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존재감을
공동 사회 앞에서 높여갈 수 있는
미래를 창출해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OneNote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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