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8일 수요일
오후 3:13
TODAY'S GOD MESSAGE
( 2018-2-28 rainy day)
THE
CITY OF DAVID. ONLINE CHURCH
* SOUTH KOREA , SEOUL
PASTOR.
DUK SOO YOO
<
오늘의 말씀 >
* 핵심적인 교훈
(주님 안에 돌아온 영적인 신앙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그 만이 느끼는 삶 속에서의
신앙의 실질적인 효력에 관해서 소개합니다)
아빠들은 그동안 너무 오랜 세월에 걸쳐서
거의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지 못할 때
신앙적 낭패 상황에 빠져 들게 되지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지 않고
내 힘
만으로 걷는 신앙의 길도 있습니다.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구체성을 띤 깨우침이 없는 점에서
하나님의 뜻에 관한 변별력이 사라진
눈이 먼 소경이 된 교회들도 많지요.
영적으로 무지한 교회가 됩니다>
대체적으로 절대 다수에 속한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길에서는
아직도 대다수가 실제적인
신앙 생활속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신앙의 본질적 개념의 영역을
신앙의 영역에 설정해 놓지 못한 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인도하심이라는
신앙의 본질적인 개념을 모르고
자신의 힘으로 혼자의 삶을 살게 되지요.
그런 영적으로 무지한 신앙의 경우는
신앙인들이 말로 천국을 입으로
시인을 한다고는 하나
현실에서 목자장이 되시는
주님의 길잡이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에 속한 사람들이
어둠 속에 방황할 때도
주님의 말씀이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적이 없기에
천국 말씀의 신앙의 길을 밝히는
등대의 불빛이 그들에게
신앙의 깨우침으로 도달한 적이 없기에
늘 깊고 깊은 생활속에서 신앙인들은
주님의 모습은 계속해서 보이지 않고
나 혼자 현실의 어둠을 헤쳐가려 다가
어두움의 깊은 환난의 나락에 빠져 들며
내 갈
길을 열지 않고 가로막는
인생의 거침돌이 되는 삶의 갖가지
제약의 늪에 갇혀져 살았다는 깨닫지요.
앞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의 백성들에 대한 교훈들이
주님의 음성이
천국의 말씀 안에서 들려질 때
신앙인들은 기존 교회들의 폐습인
그의 닫혀진 귀를 열고
천국에서 세워진
진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가르쳐 지는 천국의 말씀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고쳐 듣고
하나님의 나라가 걸어가야 될 길을 숙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신앙적 관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내가 깨달을 수 있는
내가 산 신앙적 체험해 볼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내가 영적인 안목의 신앙적인 판단력의
눈이 어둔 환란의 그늘속에서 밝혀져야
영적인 무지 상태를 낳는 그런 악조건의
어둠의 버려진 신앙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총 안에서
나에게 허용될 수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를 받는 삶도
있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진심을 다해 주의 뜻을 찾고 따르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에 동참할 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마음을 고쳐 돌아설 때
주님의 뜻을 이루려 할 때
하나님의 허락 속에서
무엇이 천국 신앙의 길로
바르고 올바른 길인가를 분별하는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영적인 변별력이
획득될 수 있는 길을 열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에게
천국의 길이 제시되고
하나님의 뜻이 가르쳐 지는
신앙의 길잡이로서
신앙인들은 오직 신실한 신앙안에서
주님께 드려지는 꾸준한 기도를 통해서
때로는 설교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서
신앙의 안목이 보다 밝아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하나님의 나라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 주님은 성도가 모르고 있는 것에 관해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 주께서 행하시는 천국의 일들에 관해
너희가 너희 힘과 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나를 대신해 이루려
나서려 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의 손의 힘으로
너희들의 행위의 것으로 이루어 진다고
늘 착각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신자들의 행위나 소관에 속하지 않는다"
라고 직접 말씀하시게 됩니다.
<요약>
하나님의 일은 오늘도 여전히
직접 하나님께서 행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천국에 상황에 관해
영적인 안목의 눈이 뜨여지지 못한
신앙인들은 오직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신앙적 목표로서 그 목적에 따라
자신의 신앙적 판단과 결정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내가 얼마든지
내 혼자의 힘 만으로도 할 수 있고
성공리에 천국의 일들을
내 힘으로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런 길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
신앙적 불법적인 행위를 낳는 것을
모르지요.
하나님의 뜻이 배제된
사람이 중심이 된 신앙적 실수를
계속 교회가 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 아빠는 현재 신앙 생활을 해도
좀처럼 의미가 없어 신이 나지 않지요.
그래서 신앙 생활속의 의미를 잃고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지요.
그럴 경우 그는 생각하기를
" 우리들의 신앙 생활이 별로 다"
라고 생각하지요.
- 칼춤을 추는
망나니는 죽고 죽게 됩니다.
아빠 자신은
그동안 너무 자신의 신분을
낮추고 낮춰 살고 있습니다.
여자는 재빠른 처세술에 따라
스스로를 높인 삯꾼들 만을
오히려 큰 종으로 여겨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께서 선별해서
시대에 그를 높였다고 여기지요.
거짓 종들을 인정하며
천국의 종으로 알고 그를 높여주고
훌륭하게 생각하지요.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곁길로 벗어난 신앙인들은
자신이 나쁜 인생을 살아 가면서
자신과도 같은 가은 무리를 지은
나쁜 인생을 위하고 살지요.
그들 처럼 나쁜 영들을 사모하는 관심은
하나님께 버려진 타락한 안목의 눈을 낳고
항상 나쁜 것이 다 옳게만 보이지요.
그래서 자신을 향해서 가르쳐진
바른 신앙의 가르침의 길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의
천국 말씀을 통해 지적되고
가르쳐 질 때 그 자신을 찌른다고
생각할 경우도 있었지요,
그래서 여자의 일부는 아예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 되는
천국의 말씀을 외면하게 되지요.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천국의 지식의 보고의 문들이 닫혀지고
삯꾼들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거짓 신앙의 결과로서
오랜 세월이 지나간 후에 가서야 알 수 있는
나중에 가서 심각한 후회를 낳는
미래에 파멸을 낳는 가르침의 길 만이
활짝 열려질 뿐이지요.
다수의 여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기보다
자신을 알아주고 위해주는
삯꾼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며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의 원하는 소욕에 따라 진행해 가지요.
그런 삯꾼들의 가르침에 따라 다가올
영원한 지옥의 파멸을 두려워 하지 않고,
쉽게 영혼이 팔려져 사단과 계약을 맺고
달콤한 길에 속아 이끌려져
왜곡된 신앙의 길을 따라
천국에서 버려진 길로서
하나님을 떠난 신앙의 길을 걷게 되지요.
<영적인 소경이 된 신앙인>
우리는 천국의 신앙의 길에 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신앙의 길 >
* 기도하는 신자의 일부가
천국과 주님을 모르는 상황을 낳는
영적인 신앙적 안목의 눈이 어두워진 이유
그동안 그가 잘못된 가르침들의 길을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따라 다녔기에
그런 사실을 성도로서 처음에는 모르다가
수십년 간의 헛된 열매 없는 신앙적인
낭패 만이 거듭되는 신앙 생활이
실패로 결말을 맺게 되지요.
슬픈 세월을 겪고 다 지나간 후
그때 가서야 그 낭패의 길에 들어 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깨닫고 알게 되지요.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그런 영적인 소경과 같은 어두워진 안목이
그런 신앙의 길을 혼선 시켜가며 갈 길을
흐리고 어둡게 볼 수 없도록 만들어 갔다는
점입니다.
* 핵심 지적 포인트
사람들이 인간적인 교훈으로 가르치는
신앙의 길을 따라 갔기에
그런 신앙의 길에서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배제한 채 살게 되지요.
늘 사람이 중심이 되는
신앙의 가르침을 배워
그의 그릇된 신앙적인 기초로서
하나님의 뜻을 싫어하며 뒤로 밀어내고
사람의 기준으로 자신을 위한
신앙의 정도의 기준을 삼을 경우
그는 신앙의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에
영적인 혼란을 크게 겪지요.
하나님이 자기 기도대로 다 이루어지거나
허락할 줄 알았던 길이 다 무너지지요
그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을 위하는 결정 만을 앞세워
불법적인 신앙의 잣대로 생각한
신앙적인 판단과 기준들이
스스로는 하나님을 위하는
바른 길이라 생각이 되나
하나님의 뜻을 물은 적도 없었고
그가 거의 정확하게 구별 하지도 못하고
사람이 가르친 사람의 교훈이 중심이 된
자신 만을 위하는 길을
자신의 신앙의 길로 걸었기에
그에게는 하나님의 동행이란 신앙의 체험을
확신 속에서 할 수 없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외면하게 되고
결코 동행하심이 허락이 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 신앙 안에 돌아온 나이든 세대에 속한
아빠들에 대한 영적 교훈>
아빠는 자신에 대해
가끔 고리타분함을 지적했던
아내의 말이 단지
아빠를 헐뜯는 말이 아닌
진정한 아빠를 위한
충고의 말이었다는 관점의 말로 다시
번복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그런 듣기 싫은
나를 향한 비판적인 말들이
나 자신에게 들려올 때
불쾌하다고
여겼지만
아빠 자신이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되는
그런 날이 오지요.
우리가 부족해도 스스로의 잘못 들을
내 탓으로 여겨 고치려 하지 않았기에
시대는 우리에게 충고를 했을 뿐이지요.
우리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여전히 불쾌하게 여겼지요.
아빠는 고리타분하다 라는 들려지는
타인들의 말속에서 아빠 자신의 삶이
구 시대에 집착하려 드는 것을 몰랐지요.
낡은 세상에 머물며 살기를 원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지요.
나의 신앙의 길이
내 신앙적인 관점 속에서는
언제나 항상 옳다고 여겨지나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관점으로는
자신이 겉으로 만 거룩한 염소 같이
너무 고리 타분하다고 남이 지적하는
그런 관점에서 바라 보기를 원하지 않았지요.
우리는 염소의 무리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염소같이 고리타분한 인생 같이
여겨질 때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빠는 충분히 고리타분하다 지적하는
그런 타인의 평가 기준에서 탈피하려는
자신의 의지적 결단속에서
새 삶을 살려고 하는
실천 과정을 통해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뒤쳐진 의식을 스스로의 눈으로
볼 수
없었기에 자신의 부족한 점을
거의 깨닫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너무 시대에 뒤쳐지고
과거의 개념적 사고로
살았던 나의 부족한 삶이
남에게 고리타분하게 보였다는 점입니다.
|
아직도 그렇게 많은
나이든 세대들이
자신의 봉건적인
권위적인 생활
방식에서
자신의 행위를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지요.
|
시대는 구 시대적 가치성을
포용하지 않으려 하지요.
새로운 것을 자신에 맞게
계속 추구하려 들지만
낡은 봉건적인 구 시대적
제도를 바꾸려 드는
'새 시대적 흐름'은
구 시대의 봉건적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법 제정과
제도의 혁신을 요구 하며
혁신적인 제도의 개혁화의
흐름을 가속시켜 가지요.
|
아직도 나이든 세대들은 여전히
고리 타분한 생활적 개념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요.
그러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오래된 낡은 구 시대적인 생각을 품는
사고적 개념을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타인들 과의
생의 만남 과정 속에서
파생되는 두리뭉실한 낡은 전통이란
잣대의 삶의 계산 방식과 충돌이 되는
늘 정확하게 만 따져 계산 하려 드는
신 세대 감각의 차이점으로서
남과의 이해 타산적인 면들이
깊게 충돌이 될 때
오직 나 만을 주장하는
세대 개념적 감각의 차이점들이
낡은 세대의 텃세의 호령 속에서
정상적인 삶으로 정착되는
과정들이 그리 쉽지 않게 되지요.
나 혼자 만일 수 없는 독불장군식의
존재 방식으로 거부되는
나를 중심으로 한 사고의 개념들이
타인과의 공존 관계를 피할 수 없을 때
여전히 구 시대적 봉건 권위와 충돌되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법과 제도의 개선 요구가
혁신적인 삶의 생각의 기준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시대의 기준으로
법 제도를 통해 생활적 개념으로 바꿀 수 있다면
구 시대적 삶에서의 온전한 탈출이 가능하지요.
나이든 아빠 세대들이 참아야 하나요?
자신들의 생활만 고수할 때
현대인 들이 요구하는
신 세대적인 삶의 사고 방식을
나이든 세대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 채
그들의 세상에 뛰어 들어가
체험하며 접해본 경우가 적었기에
그런 길을 잘 몰랐다는 점이기도 합니다.
< 주변과의 다툼과 불화에 관한 교훈>
우리는 나쁜 열악한 상황에서
화남을 겨냥한 화풀이만 생각하며
악조건의
환경에 피동적으로 끌려만 다니며
무엇이든지 부족한 한계 상황에 만날 때
가족들과 주변과 다투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내 가족들이 참지 못해
부딪치고 싸우다 자폭하는 결과가 오지요.
그런 어리석음으로 인한
불화의 폭탄을 터뜨리지 말아야 하지요.
<아빠가 참지 못할 때 말 폭탄 터지면 다 죽지요.>
아빠는 가장으로서 화를 낸다면
가족들 간의 원치 않는
다툼과 불화의 장본인이 되고 말지요
하루 아침에 다 망하는 순간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시련과
아픔의 상처가 주는 가난과 고난이 주는
극한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주변과 불화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 아침에 불화는 망하는 길을
활짝 열어 놓게 됩니다.
불화가 망하는 길을 열지만
그런 망하는 길이
가문 대대로 이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화와 다툼은 그 원인이 되는 주체로서
그 원인들이 모두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순식간에 재앙과 화가 밀어 닥쳐서
악마로부터 가정적인 파멸의 순간이
임하게 될 가능성이 내 주변에
가족들 주변에 위험이 상존하게 됩니다.
악마가 노리는 지옥의 불길이 항시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적 필요성 속에서
주님의 보호막이 필요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악마로부터 임하는 것을
착각해 가족들로 부터 나를 겨냥해
시험이 다가온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꾸 아이들이 우리를 공격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총 안에 거할 때에
악마들이 우리에게 전면 도전해
싸울 수 없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악마가 나와 전면전을 벌이며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주 안에 거하는
성도의 삶을 지켜 주시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진실한 신앙 안에서 거할 때
주께서 우리를 직접 보살펴 주시고
지켜 주시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알 수
있게 됩니다.
<아빠는 자신을 위해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가야 합니다>
아빠는 매사 마무리가 부족합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병폐이기도 합니다.
마무리로서 일을 보완해 가기 위해서
공들여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너무 빨리 일들을 순식간에
마무리도 짓지 않고 끝내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 복수심에 불타는 원한 해결 >
아빠는 남과의 생존 게임에서 패배한 후
밀려나 깊은 상처를 받고 사회에 대한
복수의 원한이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돌이켜 회개한 후에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기로 작정한 후
미래의 어느 날 자신의 미래가 열려져
주님의 섭리의 때가 허락되어져
일을 진척시켜 간 후,
자신에게 필요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할 때
그제서야 비로서 그 원한은 줄어들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어렵게 느끼게 되는
삶의 이해 관계의 충돌로 인한
원한도 그와 동일 하지요.
<남이 나에게 백해 무익한 삶도 있지요>
우리는 그런 무능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변화된 생활로 남들에게
나의 강점들을 보여줄 때 과거에는 우리들에게
무조건 반격만 취하려 들던 사람들이
우리를 다시 보게 되지요.
<낙오된 삶은 신앙적 기준에 그릇된 경우에
해당됩니다>
신앙인들은 한번 낙오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도를 통한
회개와 신앙적 돌이킴이 필요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실패한 이유와
그가 낙오자가 된 원인에 관한 교훈을
그의 종들을 통해서 죄악이
무슨 원인이 있었는 가를 깨우쳐
그가 무엇이 잘못 되어져 왔는 가를
반드시 그에게 말씀하시게 됩니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치우쳐진
신앙의 기준으로 살았거나
그가 과거로 부터 오늘에 까지 잘못 배운 신앙이
때로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천국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실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게 됩니다.
크게 오늘에 이르기 까지 무엇을
잘못 배운 것인가에 관해 묻고 깨닫고
그 실패의 원인을 자세히 듣고 알고 갈
필요성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가치관들이 자신의 생각과 달리
천국에 기준에 미달이 될 경우
그의 삶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수 없을 때
현 시대를 바라 보는 신앙적 가치관이
아직까지 그릇된 기초 안에서
날림으로 세워진 삶에 불과 했다는
헛된 결과 만을 낳지요

한꺼번에 자신의 삶이 와르르 무너진 후에
자신의 신앙의 기준의 무엇인가 잘못된 점들이
있음을 알게 되지요.
<주님의 뜻에 반하는 사람의 뜻>
아빠는 열심히 기도해도
이직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불가능한 현실 만이 보이지요
(어떤 가난한 삶에 관해)
자신에게 천국에서 허락된 적이 없는
자신을 위한 생계의 돈 줄을
내가 내 힘으로 내 뜻대로 항상 쉽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빠 자신을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신 적이 없다는 점을
때로 알고 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이
잘못된 점이 있었는 가를 파악하고
내가 왜 버려졌는 가를 심사숙고해
가야 합니다.
신앙은 사람의 공적에 의해서
진행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일부 있지요.
신앙은 내 노력과 행위를 촉발하는
내 결정에 의해서가 결정되는 길이 걷는
길이 아니라
주님의 결정에 의해 그 인생 목표의 골이
닫혀지고 열려지는 것이 있다는 점과
신앙의 신실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길이 주님의 뜻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점을 알고 가야 합니다.
< 신앙인들의 시행 착오 2>
아빠는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한
삶의 터전에서 하루의 일과가
자신이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도
천국에 계신 주님의 뜻을
내가 나서서 이루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아빠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의 뜻에 기초한
신앙적 기준에 불과할 때
사람의 뜻을 주님의 뜻을 잘못 알고
이루려 할 경우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아무리 기도해도
주님은 쉽사리 천국의 나라의 뜻으로
우리에게 그런 기도의 내용을 허락해 주시지
않게 된다는 점을 알고 가야 합니다.
< 신앙 공동체 집단의 단결이 필요>
우리는 집단적으로 단결이 되어져야
하나의 힘으로 뭉쳐 질 수
있지요.
하나의 단체로서 활동하고 움직이며
결속되지 못한 채 하나로 단합되지 못할 경우
악마들의 힘이 너무 크게 보이게 되지요.
*
KEY POINT
우리가 만약 약체 집단에 머물 경우
세상의 모든 기득권의 기회를 빼앗기게 되고
상실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남은 땅을 판다는 사람도 있지요.
남겨진 남은 땅을 팔아야 할 때 슬프지만
따지고 따졌던 그의' 엉터리 신앙관이
그를 그릇된 신앙의 길로
너무 어둡게 몰고 갔었다는 것을
그가 모를 뿐이지요.
< 신앙인들이 늘 겪는 신앙 착오 3>
* 어떤 신앙인의 믿음이 낳는 시행 착오의 길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땅이 열려진 것이
미래적 사건으로 나에게 이미 확신 속에서
현실에 열려지고 있다고 굳게 믿게 되지요.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현실로
아직 이루어 지지 않는 꿈에 불과한
기도의 약속을 하나님의 뜻으로 믿고 가나
그의 번영의 미래의 약속 만을
믿음으로 그 가능성 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지요.
그의 현실로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미래를 자신 마음대로 생각해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