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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SPIRIT IS RAISED TO THE TEMPLE OF HEAVEN > My spirit was lifted up so high and very quickly in that I reached the temple of God in heaven I saw Jesus Christ standing in the center of the temple in heaven. I was directed by the Lord in the temple of heaven to continue the work of God I am in the process of delivering The Word Of Heaven today. 2020년 현재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상에서 온라인 설교 사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덕수 목사입니다. 사역자의 영이 천국으로 올려져 천국 성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후 주님의 명령에 따라 온라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통 신앙과 한국 기존 교회들과의 신앙적 기준에서 개념 차이가 나고 있는 부분들에 관해 한글 개역 개정판 성경과 NIV, NEW KING JAMES VERSION BIBLE을 상호 비교해 가며 설교 사역을 진행 중입니다. I will tell the kingdom of heaven about the will of God who is speaking to him personally about the life of modern believers living today.

2016년 7월 13일 수요일

A GUILTY MIND AND DEED

       TODAYS GOD MESSAGE 2016-7-13
(    현대인 의    인생을   신앙적   관점에서  다시 평가해 봅시다 )


THE CITY OF DAVID, HOME CHURCH
PASTOR. DUK SOO YOO
오늘의 다윗 성 가택 교회 말씀
작성자;  유 덕 수   목 사
 
< PROVERBS 17 > < NIV >
 
15 1) Acquitting the guilty and 2) condemning the
innocent—the LORD detests them both.
 
1) 악인을  의롭다 하고   2)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여호와의 미움을 받느니라,
 
 
( 오늘의  신앙적 교훈 ;   현대  신앙인들의   빗나간  신앙 )
* KEY POINT
형식적 신앙의 길로서  그가   하나님께로 부터 멀어지고 버려지게 되는 신앙으로서 나에게  하나님으로  부터 기도의 응답이 거의 없거나 하나님과 관계가 끊겨져 거의  축복된 신앙적 결과를 맺지 못하는 그 구체적인 신앙의 병폐와 원인을 살펴 봅니다,
 
< 그가 자신만의   주관적  신앙  기준에 따른   삶의 가치관오늘까지   지켜  왔으나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는   구체적인  신앙적  원인과  이유>
 
<  이유;   자신만의  주관적인 신앙의  판단과  기준에서  자신 만의 신앙적 기준으로 잘 못     채택해 자신이 성경에 기준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됨으로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앙 생활의 기준이 신앙적으로는  성경의 기준에서  크게  어긋난 신앙  생활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의 삶의 생활 방식이   신앙의 정도에서 벗어난 기준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들은 종종 나의 개인적 신앙의 관점으로만 신앙의 기준을 옳다고 여기고 하나님의 법의 기준을 무시한 채 내가 기준이 되어져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나만의 불법적인 신앙의 기준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로지   나의 기준에 따라   판단해 생각하고 걸어가는 신앙의 길만이 신앙의 정통적인 바른 신앙의 기준이 된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나의 생각과 삶의 이해 관계만을 삶의 기준으로 여겨 하나님의 뜻에 가장 합당한 신앙을 지켜갈 수 있는 정통한 신앙의 기준에서 살게 된다고 마음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로서 이런 나 자신만의 이익만을 만족시켜 주는 신앙의 기준 하에서 나의 치우친 성향에서 출발한 신앙으로  현실을 바라 볼 때 나에게 큰 현실적 이로움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향해 무한 관용의 잣대로 보게 됩니다,
 
이런 삶의 방식에 기초한 신앙의 길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장 현명한 처세의 비결이요 성공에 이르는 삶의 비결이라고 생각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그릇된 신앙 생활을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항상  기도하고  판단하면서 렇게 살아가는 것이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삶의 기로에서 선 나 자신이 현실적 여러 난관을 극복해 갈 수 있는 지극히 현명한 현실적 처세에 기초한 삶의 대처의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때로 이렇게 시대가 악으로 치닫고 고쳐지지 않는 관행적 비리와 치유될 수 없는 결과를 낳는 온갖 사회적인 부조리로 가득 찰 때 세상은 악에 찌들고 병든 사회는 그릇된 악의 풍조의 길을 따라 흘러 갈 때 이런 상황에서 날쌘 제비 같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악한 시대와 동행하는 얄팍한 처세의 날랜 길이 어떤 현대인들 에게는 가장 삶을 비교적 풍요롭게 하는 길이라 생각해 하나님의 뜻을 떠난 빗나간 편법적인 신앙의 길로 가기도 합니다,

  시대가 냉혹함으로 돌변할 그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주축이   세상인들이 걸어가는 현실적인 삶의  흐름의 길을 따라  동행하면서  그가 처한    차디차고 가혹한   비신앙의 기준이 자리잡고 주도해 가는  비신앙의  기준이 이끌어 가는    현실 세계에   능동적으로  적극 대처해  가며  날마다 급변하는  예측 불허    자주 돌변하는 시대  상황세의  흐름과 새롭게 변화된 새로워진 시대의  풍조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과  보조를    맞춰 가면서  신앙적으로   현실적  삶의 대처 방식으로서 지극히 신앙의 길보다는 현실을 선택하는 처세술의 길을 선택하는  길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옳다고 여겨 그런 편법적인 신앙의 길을 현명한 처세술의 길이라 생각하고 세상의 악과 어울려 가면서 그와 한팀이 된 하나님을 버린 악인들이 가는 길에 그 자신을 동승시켜 편승할 때 우리들이 거주하는 나만의 일터속에서 이미 하나님의 뜻은 땅에 떨어져 거의 무시되고 성경의 기준은 그의 신앙 생활속의 기준에서 땅에 파묻혀져 버려진 채 하나님의 뜻은 항상 거부된 상태로 그를 위한 그 자신만의 생의 기준이 된 그 자신만의 생활 방식으로 삶을 계속적으로 살고 있다는 현실을 알고 가게 됩니다,
 
이렇게 삶의 쉽게 사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 나를 위해 신앙을 포기하고 현실적 노선을 선택해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가장 편하게 사는 길이라 생각하고 우리를 위한 우리들의 생존을 위한 삶의 현실적 관점으로서 하나님 앞에서도 나 자신의 이런 신앙상의 과오들이 용서되고 또한 쉽게 하나님의 뜻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 것이라 마음대로 생각해 판단해 버리며 이를 지극히 당연한 나의 일상 생활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 1,  신앙인이  수정해서  고쳐야 될  성경의 가르침의 길에서 벗어난 형식적   신앙  행위 기준 )
오늘 잠언서 말씀은 신앙인들의 잘못된 부분을 가르치게 됩니다,  이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서 떠난 바르지 못한  어느 신앙인의 잘못된 신앙적 행위들을  지적하고 가르칠   그에게 이미 열려진 성경안에서 제시하는 신앙상의  바른 길로 그를  이끌게 되며 자신이 평소에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 잘못된 신앙적 행위의 기준을 삶의 현장속에서 가르쳐 그로 하여금 신앙인으로  당연히  마 땅히  지켜야    신앙의 길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시는 참된 신앙의 길로서 그를 가르치고  바른 신앙적 개념으로 이끌고 그의 잘못된 신앙을   참된 신앙의 기준으로  잘못을 수정해  그를  인도하고  그의 바르지 못한 신앙적 행위를 지적하   신앙적 점에서 신앙인들이 신앙적 의무로서 마땅히 올바로 지켜가야 될 성경적 교훈이 낳는 신앙적 가이드 라인을 분명히 제시하게 됩니다, 이런 삶의 행위의 기준은 우리들의 삶의 일터 현장에서 굳건히 사수해 가야 될 새로운 길로서 내 마음대로의 신앙의 길을 걸어감으로서 성경 말씀의 기준을 깨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정도의 신앙의 길을 낳으며 정통 신앙적 기준을 제시하게 됩니다,
 
 
*(KEY POINT)
(신앙인을 번영으로 이끄는 신앙 생활의 노하우 소개)
=>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참으로 원하시는  옳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야 신앙인은 축복된 삶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크게 혐오하시는 악 길을 걷는 신앙의 길도 많으며 옳바른 신앙의 길을 걷기를 원하는 신자라면 그런 그릇된 인생의 길을 걷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 2, 그래서 우리 내가 과거로부터  오늘까지  지켜 온  신앙적 방식으로 신앙의 길이 나 만의  일방 통행적인 신앙의 기준들이 아닌가를 살펴  내가  과연 진실로  두려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 내가 걷고 있는 신앙의 길이  나의 생각처럼 성경적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가를  성경 말씀을  일일이 체크해서 신앙적으로 다시 점검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
 
잠언서 17장 15절 구약  성경 말씀  구절 속에 담겨진 신앙적 교훈을 다시 살펴 봅니다,
과거의 잘못된 신앙의 기준을 냉철히 다시 한번 나를 돌아다 보고 성경 말씀에 기준한 올바른 신앙적인 행위의 기준으로 나의 잘못된 부분들을 수정해 가야 합니다,
 
< 신앙인들의  잘못된  신앙적 행위>
신앙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잘못된 신앙적 인식관에서 기인한 점으로서 내가 인지할 수 있는 나만의 일방적인 신앙적 잘못된 관행에서 흔히 살펴볼 수 있는 점은 내가 악의 행위들을 실행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어긴다고 해도 나 스스로는 나를 위한 입장에서 나의 죄가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서 악을 용인하고 세상이 용납하는 관용적 행위로 허용될 수 있는 삶의 행위로 간주하며 사회가 용인한 행위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사회의 무차별적인  죄악 난맥상이 도미노 현상처럼 사회로 곳곳에 확산 되면서 잘못 통용된 신앙적 개념으로서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짖밟고 악을 덮어두고 두둔하고 때로는 악의 행위까지도 편을 들면서 옳다고 여겨온 신앙적 병폐로서의 악을 선으로 때로 간주하는 잘못된 신앙의 관점들을 과감히 고쳐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생각은 동양적 가치관이란 삶의 관용과 미덕이란 기준하에서 성경을 대적하는 그릇된 개념을 형성하며 동양적 가치관은 때로 집단적인 이해 관계란 입장만을 고려해 죄악을 범한 죄인에게 조도 용서라는 관점에서 악을 두둔하고 덮어 버리는 점에서 악을 적극 용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도 합니다,
 


<
 
<A> 사회적 통념에 기초한  사회적    악의 개념으로서  개선되어져야   부분; Acquitting the guilty (=  신앙인들이  타락한 관점;   사람들이 범한  죄악을 의롭다 말하고 무죄로 보다)
( 구약  잠언서  17장 15절 성경  본문 말씀의  해석;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온갖  악 행위를 저지른 악인들을 행해서 신앙인이 그들의 죄를 덮어서 무죄로 선언하거나 죄악의 참상을 알면서도 모른채 눈을 감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합니다, )
 
(KEY POINT)
성경의 기준속에서 악은 악으로 용서될 수 없는 형벌을 낳는 악의 행위로만 간주될 뿐입니다,    동양적 사고의  개념으로서 때로   사회적으로 용인된  통념 한계를 넘어서 악의 관점들이 용인되는 점들이 있게 됨을 말합니다죄가 없는 남을  겨냥해서 이유가 없이 악을 일삼고 그를 해코지 하거나 악을 범한 악한 행위까지도 때로 친구관계나 친분 관계를 명분 삼아서 악을 행사한 악인에게 죄를 묻지 말고  서로간 용서와  관용이란  무비판의  잣대로  그를 두둔할  것을 사회가  은연중에 그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참 의미로서 악을 평가하는 신앙적 의미는 사회는 한 사람을 위해서 창조된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공공 전체를 위한 관점에서 악을 저지르는 당사자가 사회적 질서와 개인의 권리와 권한을 강제로 박탈하거나 빼앗는 온갖 악의 행위들을  두둔하는 것이 허락 되고 눈을 감고 넘겨 버릴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악으로 남게 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악인(A GUILTY MIND AND DEED)들 그룹들이  행동으로 는  그들만의 악의 행위로서 그들이 패역한 죄를 저지른 상태에서 엄연히 실정법의 형법상의 법률적 기준에 의해서 그가 이미 유죄의 평결을 받게 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죄인과 함께 어울린 집단적 어두운 조직체들과의 상호 협력적 공존에 참여하고 기여한 그들만의 삶의 이익 추구라는 이해 관계 측면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생존적인 측면에서 상호 호혜적 관계성하에서 그들의 사악한 죄악상들이 사회적 통념으로도 그들의 죄악된 행위가 결코 사회 집단 조직체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타인의 삶의 권한을 짖밟고 깨는 악의 행위로 용서될 수 없음에도 그들과 어울린 집단 다수층들의 이익을 내세워 그들만의 집단적 이익을 위해 악을 선으로 둔갑시켜 버리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악의 행위로서 타인과 다른 집단의 권한까지 침범해 해악을 끼치는 부분들은 사적인 악의적 권한으로서 극히 법적으로 제한되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악은 허용될 수 없고 용서 될 수 없는 악한 죄가 됨을 그가 잘 알면서도 아직까지도 그 죄가 그대로 현재에 죄악의 상태로 머물며 우리들의 현실안에서 전혀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그들과 편승한 이익 집단과 더불어 자신의 행위로 인한 이익 공유 지분으로 남고 이익으로 그대로 유지되며 악의 상태로 남겨져 있음에도 그와 동승한 집단들은 그들을 무죄로 그냥 덮어 두고 그가 저지른 죄로부터 사악한 죄악에 대한 부분까지도 사회적 책임을 전혀 묻지 않고 그 책임을 무죄로 면제해 주는 행위로서 악한 행위에 동참하는 악한 이해관계들이 하나님의 뜻에서 크게 빗나간 신앙인들의 마음속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을 때 이는 인간의 사적인 개인적 권한으로 그냥 덮고 지나쳐 간과될 수 없는 엄연한 죄악에 해당됨을 성경은 그 잘못을 지적해 가르쳐 교훈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지켜가야 할 준법 준수 행위로서 우리가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사회적 책무로서 감당해야 될 행위로서 나의 주변과 내 가족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악을 끊고 물리쳐야 할 그 막중한 사회적인 책임들이 신앙인들에게도 여전히 마땅한 신앙인의 행위로서 신앙적 의무로 요구되고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는 그 자신만의 불평을 여전히 불만으로 토해내며 주변의 평온함을 막무가내로 깨버리는 악의 행위로서 사회를 무질서 상태로 빠뜨려 마구잡이로 혼란시켜가는 그 악인의 죄악상을 옹호하기도 하며 그런 죄악을 무죄로 평결해 사회가 포용 가능하는 것처럼 위장된  선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악의 집단 조직들이 사수해 가는 잘못된 악의 관점은 때로 생존 현장에서 악을 통해 이익을 얻게 되는 타락한 일부 신앙인 들에 의해서 저질러 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죄악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는 죄악을 동시에 낳게 되며 그 죄악에 대한 형벌성 책임에 대한 묻지 않는 죄악에 눈을 감는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의 거부하고 성경의 법을 무시하는 악한 행위로서 그 책임을 회피하는 악한 행동이 되어진다는 것을 성경이 명백히 가르쳐 교훈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우리들의 시대의 흐름을 판단하고 생각할 때 마다 무조건 자기들의 생각이 다 정도의 기준이 된다고만 생각하게 될 때불공정을 일삼는  조직체 집단은  그들 집단들만의  상호    이익 지분만을  접근해 취해가면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만을 걷게   이로서 사회는 이익 배분에 따른  이익 충돌로  아주  급격하게  평온을 유지하던 삶의  질서가  한꺼번에  가차없이 파괴  되는   극한 혼란 상태에 머물 결과 사회 조직 들은 해체되고 분열되고 혼란 상태에 빠져 결국 사회는 남을 거의 배려하지 않는 파국 상태로 치닫게 될 뿐입니다,

악인들의 입장에서는 오직 남이 자신에게 목숨까지 받쳐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극단적 이기적 관점만을 주장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런 악인들을 주축으로한 이익  관점에서  발생한 자기 색깔만의 관점인 편협한 시각과 항상 자신만이 사회의 기준이 되어져야 한다는 크게 잘못된 생각에서 근원한 왜곡된 개인주의적 입장에 치우쳐 그만의 생의 관점으로만 사물의 행태를 보고 자신만의 생각의 기준이란 색깔만을 갖고 편협한 시각으로만 사회를 보고 바라다 보고 살면서도 그런 생을 그 자신만을 위한 생의 정도의 기준으로만 보고 자신만이 항상 올바르다고 여기면서 그가 스스로 느끼는 양심의 소리를 거의 외면한 채로 하나님의 뜻을 고의적으로 외면한다는 데서 그에게도 죄악을 저지른 사람과 한 묶음이 되어져 버리는 결과를 낳으며 이는 고의적으로 그가 악의 행위를 선택함과 같은 악의 동질성이 그에게도 동일하게 악마적 죄성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악한 인격에 함께 참여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죄악의 탄생 과정이 그 자신의 본심에 의한 자의적인 행위로 저질러 질 때 그와 동행하는 그와 같은 배를 탄 같은 동질의 이해 관계에 속한 다른 집단들이 이런 그가 저지른 악의 행위를 관용이란 미명하에 자신의 이익집단 만을 위해 무한 용서라는 관점으로서 악을 용인될 수 있는 부분으로 허용되고 자신의 이익 그룹만을 돕는 삶의 미덕으로 포장될 때 그 집단에서 배제된 다른 그룹들에 속한 타인들의 삶의 권한들이 무참히도  짖밟혀 지게 된다는 점을 알고 가야 합니다,

그런 상황속에게 갑자기 그에게  몰아닥친 사회적 여파의 결과로 사회적 일부 계층들은 가진 자들 풍요의 생활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가지지 못한 자들로 나뉘어져 사회적 신분 계급의 위치에 따르는 희생을 강요하는 포퓰리즘적인 여론의 영향력에 놓여져 한쪽은 오직 지나친 피해만을 감수해야 하며 때로는 사회가 우선적으로 항상 사회적 약자 빈자만을 고려해야 된다는 발상의 치우침이 한 조직 사회안에서 계속 유지 될 경우 기득권 계층들의 사회적 독식이란 근원적 악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의 주변에는 일방적 집단적 포퓰리즘의 주장에 편승한 일부 사회적 빈자 계층들의 사회적인 악만이 무한 허용될 수 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행위로서 집단 다수에 의한 악의 행위가 용인되고 계속적으로 악의 행위가 집단에 의해서 저질러 질 때 사회는 집단적 악의 행위가 정상적인 행위로 허용이 될 수 있다고 계속 주장됨으로 어떤 집단들에게는 계속적인 피해만이 계속 남게 되는 고통스러운 결과만을 낳으며 결과적으로 상류층 사회와 하층 계급민들간의 사회 집단간의 극한 대립과 갈등 국면이 걷잡을 수 없는 대 피해 상황만을 낳는 심각한 보복 상황으로 이어져 사회적 평온함이 무너지고 다 깨져 버리는 피흘림이란 온갖 사악함과 악의 행위들로 점철(點綴)되고 어두워진 악의 세상만이 우리들 주변을 감싸게 될 때 사람들의 저지른 악한 죄악의 행위를 무죄로 덮어 버리는 어두운 세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자신의 삶이 이미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악한 길로서 그 자신이 이미 어긋난 길로 가는 것을 알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에 눈을 감고 죄악을 무한 용서하는 데서 벌써 그는 죄악에 이르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 스스로의 길을 걷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사람들의 악한 죄악을 덮고 두둔하는 신앙의 길은 그만의 인생만을 위하고 자신의 집단만을 고려하는 심각하게 왜곡되고 편협된 시각으로서만 남게 됩니다,
 
이것은 그가 죄인들의 죄악에 간접 참여 방식으로 소극적으로 죄악에 함께 공범이 되어져 같이 동참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 것을 말하며 그가 악인들의 죄악으로 인한 심각한 폐해를 알면서도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무시하는 신앙의 행위을 일삼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이처럼 그가 죄악을 두둔하고 감싸 때로는 사회적인 관행상의 악의 행위로서 신앙안에서 악이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회 집단의 악이 사회적 관행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잘못 알려진 이미 큰 죄악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사회적 결정으로서 죄악에 따른 형벌성 문책을 가하지 않고서 죄를 그대로 덮어 버리는 잘못된 악의 관행에 동참하는 죄악된 행위로서의 그 죄악에 대한 책임성을 그가 회피하는 소극적 행위로서 악을 포용하는 행위에 참여 하게 됨을 말하게 됩니다,
 
이는 그가 자신에게는 악을 저지른 죄인과 그가 직접적으로 어떤 사회적 연결 고리로서 인맥 관계가 거의 없다고 할지라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그 악한 죄악을 저지른 그 악한 행위를 바라보는 악인에 대한 용서의 관점이 때로는 피해를 입게 된 억울한 상황에 놓여진  죄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죄악들이 덮여져 무한대로 용서되거나 그가 본 잣대로 무죄가 될 수 없음에도 그만의 관용으로 죄악이 그대로 무죄로 덮여져 버려서 죄가 아닌 상태로서 용서되고 악인에게만 무한 용서라는 관점이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관점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절대로 타인의 기본적 삶의 권한을 침범하는 악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고 부인하는 악을 낳게 된다는 점입니다, 악인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 선한 사람도 역시 악인과 같은 입장에서 동등하게 동일한 삶의 권리로서 똑같이 삶을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기본적 삶의 권한이 있기에 악인에 의해서 저질러진 사회적 악은 가해자인 악인으로부터 받는 피해의 결과 결코 원 상태로 복구될 수 없는 피해의 부분들의 상처가 너무 크기에 이 죄악에 대해 용서되거나 허용 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악인들이 죄가 없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입힌 악의 가해 행위에 대한 형벌을 사회가 미루고 무한 용서라는 관점으로 사회가 악인들과의 사적인 친분 관계를 내세워 죄악의 행위에 대한 악을 저지른 자들을 사회적 약자라는 입장만을 부각시켜서 처벌하지 않는 다면 사회는 결국은 악인이 죄를 범했음에도 뻔뻔스러운 가해자들과 온갖 피해자들만이 여기저기서 생겨나 사회의 질서가 쉽게 우르르 무너져 버리는 아주 난잡한 헝크러진 사회로 가며 사회적 대 혼란 상황인 걷잡을 수 없는 대 난국 상황에 빠져 결국은 온 국민들이 다 공동 피해자로 피해자만이 무한 양산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의 주변에 펼쳐지는 이런 심각한 피해를 입힌 악한 인간들이 저지른 죄악의 행위들을 그대로 아예 무죄로 덮어 버린다면 그 상대방 피해를 입게 된 사람은 아주 큰 상처를 입고 평생을 살게 되는 아픔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죄악을 저지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가 죄악을 촉발한 피치 못할 개인적인 상황들이 있다면 이는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간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한 객관적인 입장과 시각하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양방 쌍측의 입장들이 다 공히 고려 되어져야 할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B> 선한 입장에 선 사람들을 오히려 악인으로 정죄하는 사람들 >
-- 2) condemning the innocent ---
 
때로는 사람들은 주변과의 갈등 상황속에서 자기들의 이해 관계란 입장에 서게 됩니다, 자신들을 위한 극히 이기적인 입장에서만 인생의 선과 악이라는 잘잘못을 평가함으로서 선과 악의 기준을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이해 관계만을 중심으로한 자신이 속한 집단적 이해 기준에 근거해 마음대로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고 선과 악을 자신들의 일방적인 기준하에서 마음대로 구분지어 버리기도 합니다,

아예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자기와는 거의 무관한 타인들에게 조차도 자신들의 이해 관계의 입장에 손해가 되어진다고 생각할 경우 선한 그가 아무런 죄와 무관한 삶을 살았고 죄악을 저질러서 악한 죄를 범한 적이 전혀 없어도 단지 그가 자기편이 아니라는 것만 고려하게 될 때 그들은 죄가 없는 그를 행해 적군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처럼 악이 주도해 가는 공정성이 사라진 불공정성이 이끌어 가는 악한 사회는 이런 인생의 이해 관계속에서 죄가 없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가혹하게 몰아쳐 악한 놈으로 무조건 나쁘게 만 단죄하는 나쁜 시대적 악한 풍조가 이 세상에 가득차는 경우가 삶의 현장에서 수시로 발생하기도 됩니다,
 
<보다 건전한 한국 사회로 가기 위한 사회적 낡은 관행으로 게속 유지된 부패적 성향에 대한 개선 의지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적 촉구>
 
위의 경우 그가 전혀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음에도 사회는 그를 무죄한 결백한 사람들로 보지 않고 단지 자기네들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 악인으로 단죄해 버리며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해 선한 사람을 위기의 코너로 다그쳐 몰아 세우는 인간의 악한 본성에 근간한 시대적 나쁜 풍조가 우리들의 삶으로 계속해 자리잡는 데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들이 편하게 살고 가야 할 우리들과 자손들에게 미쳐 오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나쁜 사회의 풍토는 엄연히 개선되어져야 합니다,
 
사회가 이를 방관하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눈을 감고 도외시 할 때 우리들의 사회가 점점 고쳐질 수 없는 치유가 불가능한 구제불능의 악한 사회로 지속적으로 남게 되며 결과적으로 이런 병든 사회는 사회적인 악으로만 채워져 사회적 분노만 가득 넘치는 불건전한 사회 풍토로서 악한 처세술만을 가장 우월하고 정당한 삶이라 여겨 푼돈을 획득하는 당장의 이익만을 위해 악을 따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하고 비열한 사회로 치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때로 이렇게 사람들이 악하게 살면서도 그런 행위 자체를 나만의 시대로 이끌 수 있는 악을 앞세워 성공의 대열에 선착해 들어설 수 있는 얄퍅한 처세술로만 여겨 악을 숭상하고 사람들마다 그들의 이익을 남기기 위한 악만을 사랑하는 나쁜 사회가 올 때 우리들의 현실은 매우 극한 슬픔들과 피곤만이 가득 넘쳐나는 아주 살기 힘든 서로간 피차 깊은 고통속에서 치유될 수 없는 불치의 상처의 흔적만이 남는 상황에 빠져 악을 행하지 않고는 악한 시대를 이겨갈 수 없어 결국은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악한 시대속에서 생존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나만의 이익만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한 사회가 조성될 때 결국은 사회 구성원들인 모든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오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 세상 살아가기는 더욱 정신적으로 너무 하루 하루가 괴로워지고 하루의 일과 자체가 매우 피곤함만이 남게 되며 살기 힘든 사회만을 조장하는 사회적 악이 시대를 더욱 악하게만 만들어 가게 되며 이제 세상 인생사로 너무 피곤해진 나 자신에게도 큰 피해만을 입히게 되며 나를 조금도 고려해 주지 않는 사회를 볼 때 너무 정신적으로 여유 없는 한계 상황으로만 나를 몰고 갈 때 나와 너 너와 나 모두가 다 피곤해져서 사회 전체가 모두 다 싫어지는 항상 늘 피곤한 세상으로만 치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촌 사회를 박살내는 구제 불능 성향을 지닌 일부 악한 성향의 신앙인들>
우리들의 현실은 하나님의 법이 기준이 되어져 활기찬 인생의 정상적 삶의 기준을 낳는 신앙 생활의 덕목으로 현실속에서 굳건히 지켜져 실행되어져야 합니다, 이는 참다운 생활적 삶의 기준으로서 지켜져야 할 신앙인의 덕목으로서 또한 신앙적 준수 행위로서 우리들에게 강하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사회가 자기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온갖 사회를 올바르게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과 선한 행위까지도 죽여 버리면서 악만을 적극 수용하고 오히려 악을 권장하는 사회적 혼란감을 크게 조장하는 데서 사회적 악에 물든 악한 신앙인들이 신앙의 절개를 지켜살기를 계속 거부하고 사회적 악에 적극 동참하거나 방관자로서 그런 악인들의 악한 의지에 따라 편승해 악을 선택하는 사회가 되지 말아야 된다는 점을 성경은 경계하고 가르치게 된다는 점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인생의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은 그를 향해서 분노하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인생이나 그 자신의 삶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인생을 살아간 사람들 즉 성실하게 노력하고 꾸준하게 노력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의 기준을 준수하고 인생을 살 때 그를 축복하시게 됩니다, 이는 신앙인들의 신앙의 기준이 주변의 사람들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옳바른 인생을 살게 될 때 그를 축복하신다는 점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면서도 스스로를 신앙인이라 말하면서 그의 일과속에서 늘 악만을 거의 자신의 일로 일삼고 그의 주변을 어둡게 만들어 가는 삶에 적극 동참할 때 그는 하나님께 버려져 그의 기도의 응답도 거의 없는 신앙 생활 자체가 늘 무의미한 상태로 축복이 사라진 생을 살게 되는 상황에 내던져져서 그는 마치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하나님께로부터 외면하심을 받고 버려지는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  사회적 악으로서   시대가  관행으로 여겨온 악의 부조리들이 이제는 제한되어져야 합니다>
사회적인 통념이 계속적으로 악으로 치우쳐 치닫게 될 때 사회는 오로지 지속적인 어두운 사회로만 남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나와 나의 후손들을 위해 우리들을 위한 삶의 평온함이라는 복된 삶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모두 다 삶의 행복할 수 있도록 각자가 자기의 권한에서 벗어난 남의 개인적 삶의 영역까지 마음대로 침범해서 타인의 개인적인 삶의 권한들을 유린하지 말고 각자가 타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한도 피차 존중해 가야할 사회적 기본적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Microsoft OneNote 2016에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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